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학업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을 때, 많은 이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비단 개인의 불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놀라움이 좀 가셨다. 그것을 나는, 우리 사회 특히 예술 교육과 문화 환경이 지닌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임윤찬의 솔직한 고백은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이자 더 깊은 성장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언론 인터뷰서 “한국 생활은 고통”
일부 국민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한국 예술교육 현장의 민낯 드러내
우리 사회 반성의 거울로 삼아야

임윤찬은 “고통스러웠다”고 한 이유로 ‘과도한 경쟁문화’를 꼽았다. 그는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앞서가려는 집착이 때로는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안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아프게 드러낸다.
예술은 본래 자유와 사유의 세계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입시와 콩쿠르를 통과해야만 살아남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 속에서 음악의 본질은 종종 ‘결과’와 ‘성과’에 가려지고, 내면의 울림보다 ‘스펙’이 우선된다. 임윤찬이 “17세 무렵 외부의 기대와 압력으로 큰 슬픔을 느꼈다”고 회상한 것은, 바로 이런 환경이 예술가에게 주는 정서적 폭력의 증거다.
그의 고백은 불편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한국의 예술 교육은 여전히 창의보다 평가, 탐구보다 경쟁, 재능보다 관계에 치우쳐 있다. 예술이 이러한 논리로 포장될 때, 젊은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은 쉽게 소진된다. 임윤찬의 ‘고통’은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중첩된 부조리가 낳은 사회적 병리다. 그는 그 구조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낸 드문 예외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거울이기도 하다.
일약 글로벌 스타덤에 오른 젊은 예술가는 대중의 기대와 찬사, 그리고 그에 따른 ‘유명세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불과 3년 전,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겪었을 한국 사회의 폭발적인 관심은, 때로는 예술적 자유를 억압하는 무거운 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가 언급한 주변 환경, 즉 음악 외적인 정치인과 사업가들의 지나친 관심도 예술가가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순수 예술가가 갑자기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소비되면서, 그의 모든 행동과 발언은 대중의 엄격한 잣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깊은 성찰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가 극히 어렵다.
임윤찬이 “지금은 오직 연주 일정이 있을 때만 한국에 돌아간다”고 밝힌 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외부의 소음과 과도한 기대감으로부터 벗어나 예술가로서의 내적 평온과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현명한 거리두기로 볼 수 있다. 미국 유학을 선택하고 국내 무대 활동을 신중하게 조절하는 그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유명세의 덫’에서 벗어나 음악에만 전념하려는 전략적이고 유려한 포석인 것이다.
이번 임윤찬의 솔직한 인터뷰 발언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소 서운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가 ‘고통’을 언급하고 음악적 성장을 위해 일시적으로 고국을 떠나 전념하는 모습은,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 등 수많은 거장이 조국의 혼란이나 대중의 간섭에서 벗어나 예술적 깊이를 추구했던 역사적 맥락과 상통한다. 그들이 해외에서 걸작을 남긴 것은 조국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예술적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임윤찬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그것은 ‘국민 피아니스트’라는 협소한 틀에 갇히지 않고, 오직 압도적인 실력으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세계적 거장이 되는 것이다. 인터뷰의 후폭풍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일체의 오해와 비난을 감동적인 연주로 승화시키는 것만이 궁극적인 옹호가 될 것이다.
임윤찬은 이미 국내 무대를 벗어나 글로벌 아티스트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그가 지금 할 일은 한국 사회의 환경에 대한 비판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이 정당했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차원의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가 감성적 민족주의의 테두리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음악을 선사하는 위대한 거장으로 우뚝 설 때, 그의 진솔한 고백은 한국 클래식 음악 환경의 변화를 이끈 귀중한 목소리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임윤찬의 용기 있는 선택에 따듯한 지지를 보내고, 그가 자유롭게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성숙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몫이다.
정재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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