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혐캄보디아, 그 뒤에는 혐한이 온다

2025-10-23

영국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 내 기억은 다르다. ‘혐오’의 도시로 남아 있다. 학창 시절 영국에 1년 머문 적이 있다. 당시 리버풀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아시아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봉변을 당할 수 있다며 밤에는 홀로 다니지 말라는 권고가 한국 학생들 사이에 공유됐다. 리버풀은 1900년대 초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항만도시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구조가 바뀌고 컨테이너선이 보급되면서 리버풀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70년 수만명의 항만노동자와 조선소, 창고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1981년에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한국인 등에게 돌렸다. 노동자를 쥐어짠 저임금, 광범위한 정부의 수출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아시아 개도국이 불공정 경쟁을 한다고 봤다. 이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당시 당국에 신고한 공화당원 토리 브래넘의 생각과 같다. 그는 “(구금이) 한국인들에게도 좋다. 그들은 (최저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우리의 성취를 ‘밤잠 자지 않고 일한 근면·성실’에 두었지만 리버풀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기 밥그릇을 반칙으로 빼앗는 ‘어글리 코리안’일 뿐이었다. 비단 리버풀뿐 아니었다. 맨체스터, 버밍엄 등 쇠락한 공업도시의 분위기는 다 비슷했다. 그즈음 영국에서는 실직한 전직 철강소 노동자들이 스트립쇼를 공연한다는 영화 <풀몬티>가 화제가 됐다.

서울 명동과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혐중 시위는 그때의 기억을 소환시켰다. 분노에 찬 목소리, 혐오스러운 구호는 한쪽으로는 위협으로, 다른 한쪽으로는 억울했던 그때 그 느낌을 되살렸다. 혐오스러운 문구와 음모론에 기댄 팻말과 노골적인 집단행동은 그때를 능가한다. 특히 거대 여당의 주요정치인까지 참전해 혐오정서를 퍼트리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최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코스피 상승이 ‘희한하다’며 그 배후로 중국 자본을 지목하기까지 했다. 물론 ‘증거는 없다’고 했다.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혐오정서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는 했다.

싫어하고 미워함. 국어사전이 정의한 혐오다. 30년 전 리버풀의 혐한이나 지금 한국의 혐중은 닮은꼴이다. 자신이 쇠락할 때 느끼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상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가 무서운 것은 전염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한 명의 마녀를 사냥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군중은 다음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한국 대학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혐캄보디아가 부상하고 있다. 캄보디아 내 발생한 한국인 상대 범죄에 대한 분노가 캄보디아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달리 그 기저에는 ‘우리의 공적개발원조까지 받는 나라가 감히’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 한국 관광객 대상 납치사건이 아닌 범죄조직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데서 들여다볼 것이 많다. 캄보디아는 ‘피의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혐오는 혐오로 되돌아온다. 이미 중국에서 혐한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국민적 자존감이 높아졌고, 여기에 사드배치까지 맞물린 결과다. 캄보디아에서도 캄보디아를 혐오하는 동영상들이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혐한류 정서가 꿈틀대고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한류의 주요 소비국 중 한 곳이었다.

‘K’의 힘으로 어느 때보다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다지만 ‘혐한’이 존재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일본 서점가 한쪽에는 혐한 서적이 비치돼 있다. 최근 한·일관계가 다소 해빙이 되어서 그렇지 언제고 혐한은 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다. 미국에 연수 중인 지인은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속상해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마가(MAGA)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내 혐오 흐름이 요즘 심상치 않다.

세계를 무대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반도의 운명상 ‘혐오’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 될 것이 하등 없어 보인다. 하물며 우리가 그 진원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급성장하는 상대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대응이 혐오는 아니다. 혹시나 그 기저에 몇 줌 안 되는 국내정치의 이익이 달려 있는 것이라면 심각한 자해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외국인 혐오 끝에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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