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리밍 시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넷플릭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매출과 수익 덕분이다. 비결은 콘텐트 자체보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집착이다.
넷플릭스 엔지니어들은 단순히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 30비트 컬러와 1500니트 밝기가 구현하는 명암비, 돌비 비전 화질과 돌비 애트모스 음향은 그 집념의 산물이다. 월 2만원 남짓한 구독료로 이 호사를 누리게 해준다. ‘감각주의자들’은 멜로디가 아닌 진동, 서사가 아닌 색채를 추구한다. 그들에게 넷플릭스는 이상향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상향 건설에 필요한 기술의 이상주의는 언제나 재무적 현실과 부딪힌다. 무한한 자원 투입은 곧 파산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양면 전선은 필패의 공식이지만, 콘텐트 산업은 시대정신을 담은 ‘콘텐트’와 최첨단 ‘기술’이라는 두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전선에서 넷플릭스의 선택은 탁월했다. 감독의 창작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는 대신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서기로 작정했다. 돌비 비전의 화질과 돌비 애트모스의 3차원 음향을 가정으로 전송하며 감각주의자들의 이상을 실현했다.
반면 전통적인 강자들에게 기술은 비용 부서로 취급된다. “남들 하는 만큼, 문제만 없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곳에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로 서비스를 정점에 올려놓으려는 ‘최상위 포식자’형 엔지니어가 설 자리가 없다. 넷플릭스가 이미 입체 음향을 일상화했음에도, 일부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스테레오 음향이 기본이다.
이 지점에서 ‘AI(인공지능) 3강’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되돌아보게 된다. AI 강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프리미어리그식 소프트웨어 전략’에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은 천문학적 자금을 들여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고, 그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해 더 큰 수익을 창출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역시 단순한 개발자가 아니라 팀 승리를 좌우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대우해야 한다. 그들의 철학과 이상을 존중하고, 꿈을 실현할 무대를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세종대왕 시대의 기술 르네상스 이후 600년 가까이 ‘내용이 중요하니 기술은 주어진 대로 쓰라’는 인문학 우선주의에 머물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AI 시대에 개인의 취향은 ‘무엇을’ 보느냐 만큼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좌우된다.
경쟁국들과 대동소이한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 더 높은 차원으로 비상해야 한다. 그 길은 재무제표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 곳에 있다. 천재 엔지니어의 꿈에 투자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AI 강국으로 도약할 대한민국의 유일한 길이다.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 AI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