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와 질타를 받는다. 물건을 바꾼 책임자는 인터넷 밈이 돼 놀림거리가 된다. 물건의 사양을 바꾸는 건 상인의 재량, 시장엔 널린 게 상품일 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개 조용히 떠난다. 구매 시 약속과 다르다면, 환불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상품은 그럴 수 없다. 내가 지불한 건 돈이 아니라 내 개인 정보요,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지 않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설령 시장에서 다른 상품을 고른다고 해도 타인이 동시에 함께 골라 주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매일 쓰고는 있어도 정확히 말하자면 쓰게끔 돼버렸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상품 경제로서는 고약한 상황이다.
카카오톡 의존은 ‘네트워크 효과’의 교과서적 사례다. 이용자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심지어 거의 전 국민이 쓰게 되면 그 엮임에 갇혀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사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갈아탈 때 드는 시간, 학습, 관계망 재구축 비용이 이용자 수만큼 부풀어 오른다. 특히 관계망 재구축 비용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선 학급 운영을 위해 청소년 폰에도 카톡을 깔아 달라고 학부모에게 협조 요청까지 오는 마당이다.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 이 비용은 향후 발생할 그 어떤 대체 가능성도 일축해버릴 수 있다는 걸 카카오톡은 지난 10년 이상의 사건·사고를 통해 습득해버렸다. 카톡 사찰 논란, 데이터센터 먹통 사건 등 사회면을 도배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사용자 이탈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 탄탄한 사용자층이라니, 수익화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준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맹목적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기보다는, 이탈이라는 선택지를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인질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소극적 이용, 즉 이용 시간 감소뿐이다. 이용자 수는 견조해 보여도 이미 체류 시간은 인스타그램 등 소위 ‘인싸’ 앱으로 오래전부터 분산되고 있었다.
가족, 학교, 거래처, 공공 등은 쓰던 걸 써도 연애나 팀, 취미, 창의적 분야에는 다양한 앱으로 맥락 분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채팅이라는 기능 자체는 사실 어느 앱에나 붙일 수 있을 정도로 평준화됐기에 가능한 일. ‘독점’은 수년째 희석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카카오톡의 남은 수명은 각자에게 남은 단톡방의 수다.
당연히 카카오톡은 이들 소극적 인질을 다시 적극적 사용자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모든 산하의 문어발식 확장 사업이 이들이 적극적 사용자라는 전제하에 구성됐으니 당연하다. 이제는 어떻게든 큰 도박을 해야만 한다. 단톡방 말고도 사용자를 잡아둘 무언가를 뽑아내야 한다. 이 ‘빅뱅 프로젝트’에는 외부 영입 등 인적 수혈도 필요한데, 욕먹으며 험한 일을 기필코 해내는 것까지도 암묵적 업무 범위다. 이러니 말 그대로 다시 ‘롤백’할 수는 없는 길. 그 방향이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도 오로지 전진뿐이다.
그런데 과연 단톡방이 옮겨질 수나 있을까? 사실 결심만 있다면 방법은 많다. 애플 iOS 26 업그레이드로 이제 아이폰 안드로이드 모두를 아우르는 RCS 단톡방도 만들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변치 않는 사용자 수란 이상한 일이다. 다만 그게 이상한지 아닌지는 우리 인질들의 리터러시에 달려 있기도 하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단독] 카카오 '숏폼 논란' 속 토스도 뛰어든다](https://img.newspim.com/news/2024/11/12/24111210553685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