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책이야기- 열 네 번째
이동준은 광주에서 출생했다. 책을 좋아하고 공상을 많이 한다. 현실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됐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만 동시에 긍정의 힘을 믿고 있다. 호기심도 많아서 여러가지 일에 관심이 많고 치과의사로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편이며 겁도 없다. 도전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목포교도소를 거쳐 현재는 전주교도서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
- 편집자 주

요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MBTI 관련 재미있는 영상과 글들이 많다. 또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인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과 잘 맞을까?’ 역시 MBTI와 엮어서 해석하는 방식도 많다.
물론 완전히 신뢰하면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뻔하게 “재미로만 보세요”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다(물론 MBTI 전문자격교육을 받은 사용자에게 받은 검사를 바탕으로 한 경우에 말이다). MBTI검사는 꽤나 과학적이고 심오한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사이다.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는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 모녀가 칼 융의 ‘심리유형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개발한 성격유형검사다. 현재 이 검사는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MBTI 검사는 굉장히 널리 보급돼 있어 대부분의 심리상담소에서 검사를 받아볼 수 있다. 대학생인 경우엔 학내 상담실에서 무료로 받아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온라인 심리검사를 제공하는 심리상담소도 많아 집에서 간편하게 받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 받든 올바른 해석을 받기 위해서는 MBTI 전문자격교육을 받은 사용자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MBTI 문항검사는 유형을 결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문항검사 결과=당신의 유형’이 아니다. 문항검사에서 나온 결과(Reported Type)는 참고용이고 상담가와 내담자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담자의 성격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유형(Best-Fit Type)을 찾아 성격유형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각 성격유형의 여러 세부적인 특징들, 이른바 단면(Facet)들에 대한 세부점수를 제공한다. 주요 성격차원 아래에 딸린 이런 하위척도들을 다면척도(Facet scales)라고 부른다. 같은 유형이라도 이 다면척도의 점수들이 사람마다 완전히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유형이라도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같은 유형이라도 그렇게 제각각이라면 ‘유형’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같은 유형은 비슷한 인식-판단 방식을 가지고 있다. 사실 MBTI는 성격유형을 분류하기 위한 검사가 아니다. MBTI는 유형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단서로 그런 성격차이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이다.
MBTI는 사람들의 인식-판단 방식이 저마다 다르고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성격이 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MBTI는 인식/판단 기능들에 관한 융의 이론을 통해 성격차이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MBTI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성격유형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원인, 인식(감각과 직관)과 판단(사고와 감정)의 개인차이다. MBTI는 성격유형을 다루지만 사실 성격유형이라는 것은 MBTI에서 근본적인 부분이 아니며 더 근본적인 것은 성격의 원인이 되는 ‘인식-판단 방식’의 개인차이다.
그렇다면 MBTI 성격유형검사의 이론적 기반은 무엇인가? MBTI에 등장하는 외향, 내향, 감각, 직관, 사고, 감정 등의 개념은 모두 융의 심리유형론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심리유형론이란 외향과 내향이라는 의식의 두 태도와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라는 네 심리기능에 관한 심리학 이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네 기능을 모두 사용하지만 사람마다 기능들이 분화된(발달한) 정도가 다르고, 그 차이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의 차이를 만든다고 보았다.
MBTI와 심리유형론에선 ‘성격유형’ 혹은 ‘심리유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무한히 다양하며 ‘유형’이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만 이해하기 쉽게 성격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무척 편리하고 유용하기 때문이다. 편의상 비슷한 성격끼리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다루는 것뿐이다.
MBTI는 성격유형이라는 범주를 이용해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한없이 막연한 주제에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유형이라는 것이 광범위하고 느슨한 카테고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씩 나눠서 살펴보자. E유형과 I유형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성격유형일 것이다. E유형은 외향적이고 활발한 유형, I유형은 조용하고 얌전한 유형이다. 이 둘의 차이는 가장 눈에 띄고 비교적 쉽게 구별할 수 있다.
E유형과 I유형은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극의 양이 서로 다르다. 신경계의 차이 때문에 E유형은 최적 각성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I유형보다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E유형은 다소 시끄럽거나 혼잡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잘하기 쉽고 I유형은 조용하고 단조로운 상황에서 무언가를 더 잘하기 쉽다.
감각(S)과 직관(N)은 ‘인식기능’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관련이 있다. S유형과 N유형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들은 아예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S유형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구성된 세상을 바라보는 반면 N유형은 그 위에 상상이 덧칠해진 세상을 바라본다.
S유형과 N유형이 잘 지내려면 서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사람마다 천성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T)와 감정(F)은 ‘판단기능’이다. 1차적으로 감각, 직관을 통해 지각한 정보에 대해 2차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T유형과 F유형이 나뉜다. 2013년 유력한 학술지인 『Neuroimage』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분석과 공감은 상호배타적인 기능이라고 한다.
fMRI(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연구에서 타인에게 공감하는 동안 사용되는 뇌영역과 분석적 사고를 하는 동안 사용되는 뇌영역이 서로를 억제하는 형태로 작동하는 모습을 관측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MBTI가 분석(T)과 공감(F)을 서로 반대되는 기능으로 놓은 것은 과학적으로 무척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BTI에서 J/P지표는 ‘생활양식 지표’라고 불린다. J유형은 좀 더 조직화된, 질서정연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고 P유형은 비교적 덜 조직화된, 보다 자유분방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
J유형과 P유형은 시간약속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다. P유형은 자기가 시간약속을 어겼을 때 J유형이 무척 괴로워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일정이나 계획을 미리미리 알려주고 변동사항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 한편 J유형은 P유형이 너무 빡빡한 계획이나 규칙을 답답하게 여긴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다.
마지막으로 편안-불안 척도이다. 예민한, 섬세한, 상처받기 쉬운, 감정기복이 큰, 정이 많은, 정서적 지지를 바라는, 우울하기 쉬운, 불안하기 쉬운,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감정적인 성향을 사람들이 감정형(F)의 특징이라고 자주 오해한다. 사고형(T) 중에도 이런 예민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감정형(F) 중에도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이런 성향들은 T/F지표와 상관이 없다.
1987년 데이비드 선더는 마이어스가 준비한 수백 개의 검사문항들에 대해 요인분석을 실시했다. 그런데 분석결과 위와 같은 예민하고 불안정한 성향들은 감정(F) 지표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F지표는 공감적이고 인류애적인 성향과만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러니까 F지표는 감정 중에서도 측은지심이나 자비, 박애, 아가페적 사랑같은 이타적인 감정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마이어스와 선더는 개인의 정서적 안녕감과 관련된 추가적인 척도, 편안-불안 척도(Comfort-Discomfort Scales)를 새로 만들어 MBTI에 추가했다. 현재 이 척도는 충족도 척도(Sufficiency Scales)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일부 MBTI버전에만 이 척도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것을 유형지표로 만들지는 않았다. 즉 MBTI에는 편안-불안 점수만 있고 편안/불안 유형은 없다. 이것은 마이어스가 예민한 성향을 하나의 ‘성격유형’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상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둔감한 성향을 성숙한 상태라고 여겼다).
그러나 성격의 유전성에 관한 현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예민한 성향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 예민한 성향 역시도 성격유형으로 간주해야 옳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는 MBTI의 단점 중 하나가 정서적 안정성 지표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고안한 독자적인 표기법을 소개한다. 정서(affect, a), 둔감(blunt, b)이다. 이것을 다섯째 지표로 선정했다. 물론 전통적인 MBTI에서 다섯째 지표는 없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자신을 표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b유형은 자기가 보통이고 a유형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b유형은 보통이 아니고 보통보다 둔감한 편이다.
a유형의 이런 민감함이 b유형들에게는 귀찮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유형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민감성이 집안의 생존율을 높이는 ‘레이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a유형은 자기반성을 많이 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더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있다.
MBTI에서 감정(F)이라는 지표이름은 정말 오해를 많이 불러일으킨다. 사실 사람들이 ‘감정’이라 생각하는 것들 중에 생각보다 무척 적은 분량만이 F지표와 관계돼 있다.
1. 감정 표현을 많이 하고 즐거움과 흥겨움을 잘 느끼는 성향: 외향(E)
2. 자연, 문학, 예술, 현상, 경험 등에 대해 풍부하게 느끼고 감동하는 성향: 직관(N)
3. 예민하고 우울과 불안을 잘 느끼며 상처받기 쉽고 정서적 지지를 원하는 성향: 정서(a)
F지표는 공감적인 태도, 인간애, 자비, 동정심이 많음과 관련이 있다. 박애정신, 자비, 아가페적 사랑 등 보편적인 윤리적 감정, 그에 따른 가치판단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바로 ‘추상적 감정’을 측정하는 것이다.
MBTI에서 감각과 직관은 인식기능으로 정의된다.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대상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감각만으로 지각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신호에 대한 뇌의 처리과정이 있음으로써 지각이 성립한다.
일반적으로 외부대상에 대한 지각은 두 단계를 거친다. 순수한 감각자료들을 인식하는 첫째 단계를 감각(S), 이 감각자료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둘째 단계를 직관(N)이라 부른다. 둘 사이의 비율에 따라 성격유형이 나뉜다. 즉 감각에 대한 직관의 의미부여가 비교적 적을 경우 S유형, 의미부여가 비교적 많을 경우 N유형이 된다.
양쪽은 바라보는 세계자체가 다르다. S유형은 사실로 가득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반면 N유형은 의미로 가득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 이 벽은 종종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도 갈라놓는데 S유형 부모가 N유형 자녀를 이상하고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거기서 상처를 받고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융은 사고와 감정을 판단기능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이란 ‘의사결정’같은 것과는 다르다. 사실상 ‘명제’와 거의 같은 의미다. 어떤 개념들(A, B)을 주어와 술어의 관계로 결합시키는 것(A+B)을 판단이라고 한다.
‘의사결정’은 비이성적 기능(감각, 직관)으로도, 이성적 기능(사고, 감정)으로도 할 수 있다. 그냥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에 따라 결정하거나, 충동이나 정동에 휩쓸려 결정해버리는 것이 비이성적 의사결정이고 이성적으로 숙고해 결정하는 것이 이성적인 의사결정이다.
융의 유형론에서는 특이하게도 감정을 이성적 기능으로 구분한다. 융은 자아의 통제하에 있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판단만 ‘감정판단(F)’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원래 마음속에 있던 것이다.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순간의 구분때문에 잠시 의식하기 힘들어졌을 순 있지만 시간이 지나 기분이 진정되면 굳건히 서 있는 ‘감정’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감성(N)은 외부대상에 의해 촉발된 인식이다. 순간적이고 반응적인 것이고,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다. 많은 경우에 감성이 감정의 재료가 된다. 감성적 경험들이 마음속에 쌓여 비로소 상대에 대한 감정이 되는 것이다.
융은 감정을 다시 두 종류로 나눈다. 경험에 의해 생겨난 감정(구체적 감정)과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잠재돼 있는 감정(추상적 감정)이다.
구체적 감정(S+N+F)는 개인의 경험(감각, 직관)을 토대로 하는 감정이다. 감성에 수반되는 기쁨, 슬픔, 분노, 불안 등의 정서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애착, 사랑, 증오 등이 있다. 긍정적 정서는 외향(E), 부정적 정서는 정서(a) 지표와 관련이 깊고 감정(F)와 관련이 없다.
추상적 감정(F)은 경험(감각, 직관)에 의존하지 않는 감정이다. 인류애, 박애정신, 자비, 아가페, 보편적인 윤리적 감정과 그에 따른 가치판단이 있다. 감정(F) 지표는 이것만 측정한다.
이렇듯 감성(sensibility)과 정서(emotion), 그리고 인간애(humanity)를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격 이해의 첫걸음이다. 통계적으로도 따로 기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적이며 예민한 사람(NFa)도 있지만 예술적 감수성은 풍부하나 공감적이지도 예민하지도 않은 사람(NTb)도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공감적이지는 않지만 예민하고 상처 잘 받는 사람(Sta)도 많다.
저자는 우리가 ‘성격’이라 인식하는 경향성들은 이미 절반 이상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다고 말한다. 일란성 쌍둥이의 연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성격을 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술을 익힌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유전자에 새겨진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MBTI는 검사에서 측정된 피검자의 특징들이 일시적인 증상인지 영속적인 성격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MBTI를 실시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더 진단적인 검사(MMPI-2 같은 것)가 더 유용할 수 있으며 MBTI 검사는 병리적인 문제를 해결한 후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MBTI가 타고난 성향의 측정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얼핏 어릴 적에 성격유형을 측정하면 왜곡이 덜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릴 적엔 성격의 많은 부분이 아직 잠재된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성별도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의 광범위한 연구에 따르면 우호성과 산경성에서만 주로 나타난다.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적으로 조금 더 동정심이 많고 정서적으로 예민하다. 하지만 개인차가 성차보다 2배 이상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성격유형간의 궁합에 관해선 공식적으로 연구된 것이 거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궁합표는 모두 작성자의 주관적 관찰이나 상상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도가 충분히 높은 궁합표를 만들기 위한 표본을 모으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부분적으로는 연구가 진행됐는데 다음과 같은 경향성이 있다.
1) 사람들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유형보다는 비슷한 유형(2~3개 지표가 겹치는)과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2) 일반적으로 일치하는 지표가 많을수록 갈등이 적고 일치하는 지표가 적을수록 갈등이 많다. 특히 N/S지표가 일치하는 경우 긍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3) 예외적인 궁합도 일부 있었다. 반대 유형에게 더 매력을 느끼거나 같은 유형보다 반대 유형과 결혼했을 때 만족도가 높은 경우들도 있었다.
3)에 해당하는 예로는 TP유형끼리의 결혼이 있었다. TP유형은 다른 유형과 결혼했을 때 만족도가 더 높았다. 그 반대인 FJ유형은 같은 유형과 결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TJ, FP유형들도 끼리끼리 결혼했을 때 만족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유형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5년 미만인 부부는 성격차이(특히 S/N유형 차이)에서 많은 갈등을 느꼇지만 5년 이후에는 성격에 의한 갈등이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MBTI는 현대심리학의 성격모형이나 심리검사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MBTI의 본질적인 부분은 사실 근대철학의 ‘인식론’과 더 닮아 있다. MBTI가 근본으로 하는 융의 심리유형론이 현대심리학 태동기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심리학이 철학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
현대의 심리학은 정말로 과학적, 실증적이고 훌륭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정밀하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현미경이 필요 없고 돋보기정도만 있으면 된다.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성격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돕는 ‘돋보기’가 바로 MBTI이론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MBTI가 그런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에서 다름을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반대되는 유형끼리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배울 수 있고 서로 보완해 줄 수 있으며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사람들이 그들의 다양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름’을 활용하지 못하고 다툼의 원인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MBTI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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