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요. 짐 찾으면 다 돌려받을 거야.” “괜찮지 않아. 나 무서워.” “걱정 말고, 건강 잘 챙기고 끼니 거르지 말고. 알았지?”
자신을 선박 조향사라 소개한 산드로는 끊임없이 피해자 A씨(40)를 달랬다. 지난 3월 인스타그램 DM으로 접근한 산드로는 이후 A씨와 온라인 연인이 됐다. 그는 ‘6677’ 자신의 짐 소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새벽 5시부터 ‘어떻게 지내고 있냐’며 A씨의 안부를 물었다. 또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생기냐’ ‘바다 한가운데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감정에 호소했다. 산드로의 짐을 옮기는 배송회사는 A씨에게 지속해서 추가 금액을 요구했다. A씨는 17차례에 걸쳐 1억6500만원을 부쳤는데 이 중 1억3000만원은 빌린 돈이었다. 알고 보니 A씨가 송장 번호를 전달받고 짐의 위치를 확인했던 사이트는 가짜였다. 이후 해당 사이트는 폐쇄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10월 피해자 14명으로부터 약 14억원을 가로챈 연애빙자(로맨스스캠) 국제사기단 총책인 러시아 국적 A씨(44) 등 12명 검거하고 이 중 9명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하고, 카카오톡 등 대화를 이어가며 온라인 연인 관계를 맺는 수법을 썼다.
이들 일당은 파병 미군·UN 직원·선박 조향사·유학생 등을 사칭해 은행 계좌 동결 해제 비용, 택배·통관비, 금괴 배송비 등을 요구하며 피해자들에게 금전을 요구했다. 미국 유학생이라며 “이탈리아 디자이너 회사에 취업했는데 계좌가 묶여 풀어야 한다. 해제 비용을 빌려주면 갚겠다”라고 말하고 2900만원을 뜯어낸 사례, 해외 근무하는 군의관을 사칭해 “UN과 우크라이나로부터 보상으로 받은 금괴를 대신 받아달라”며 1220만원을 가로챈 사례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A씨 사례처럼 허위 사이트를 만들어 피해자에게 가짜 정보를 확인시키고 신뢰감을 쌓는 예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장기간의 교류로 형성된 감정적 유대관계 탓에 큰 의심 없이 이들에게 속아 넘어갔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평소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등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로맨스스캠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찰은 “로맨스스캠은 전기통신을 이용한 재산범죄임에도 관련 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범행 이용계좌 지급정지 등 임시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로맨스스캠에 활용된 계좌가 주로 국내 입국했던 외국인이 출국시 판매한 대포통장이기 때문에, 체류 기간이 만료된 외국인 명의 계좌는 이용이 정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