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기의 문화 기행] 피사의 사탑, 하늘과 중력을 잇다

2025-12-12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햇살은 유난히도 따뜻했다. 그러나 피사 공항을 나오니 장맛비처럼 비가 거세게 내린다. 택시를 타고 20여 분을 달려 도착하니 멀리 기울어진 흰 탑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울어진 탑, Torre di Pisa-피사의 사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와 인간의 도전이 서로 겨루는 듯한 거대한 시계처럼 보인다. 마치 수백 년 동안 땅과 하늘이 서로를 밀어내며 겨루고 있는 장면 같다.

탑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한 사람을 떠올린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그는 400여 년 전 이곳에서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꾼 실험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는 믿음에 도전하며 갈릴레오는 하나는 무겁고 하나는 가벼운 두 개의 쇠공을 이 탑 꼭대기에서 동시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두 공은 거의 같은 순간 땅에 닿았다. 그 짧은 순간, 세상은 “믿음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이동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단지 쇠공이 아니라, 중세의 신학적 질서, 그리고 새로운 과학의 문이 열리는 신호였다.

그날 오후, 사탑 옆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우산을 쓰고 미라콜리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은 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뻗어 탑을 ‘받치는 포즈’를 취하며 웃었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탑이 우리를 시험하는 듯 보였다.

“무엇이 진실인가? 네가 믿는 세상은 정말 그렇게 기울어 있지 않은가?”

피사의 사탑은 지금도 조금씩 기울고 있다. 하지만 그 기울어짐 덕분에 우리는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운다. 무게가 다르다고 속도가 다르지 않듯, 사람마다 걸음이 달라도 결국 닿는 곳은 같다.

갈릴레오의 실험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삶의 은유다. 삶은 때로 기울고,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결국 중력 즉, ‘진실’은 우리를 땅으로 이끌어 준다.

피사의 사탑을 떠나는 길,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늘과 땅, 믿음과 이성, 그리고 인간의 발걸음 사이 그 얇은 선 위를 걷는 것이, 아마도 여행이고 삶이리라.”

권오기 여행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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