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천장

2025-12-12

독수리 떼가 비상하는 언덕 너머는 황량하다. 키 낮은 풀만 듬성듬성한 것으로 보아 날이 가물고 서늘한 지역일 테다. 이런 땅에서는 죽은 이들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갈까. 화장할 나무는 적고 땅은 자주 얼어 묻힐 수도 없는데. 티베트 불교를 믿는 쓰촨성의 라롱 마을. 이곳에서는 주검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하늘로 올려보낸다. 독수리에게 시신을 보시하면, 육신을 쪼아 먹은 새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실어 나른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독수리들이 공양을 잘 마친다는 것은 영혼이 잘 떠났다는 길조다. 하늘에 장례를 치르는 천장(天葬). 장례를 맡은 천장사들은 연기를 피워 독수리 떼를 불러 모으고, 독수리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시신을 수습함으로써 공덕을 쌓는다. 숨이 멈췄을 때부터 환생할 때까지 49일 동안 이생과 다음 생의 중간 단계에 머무는 영혼을 위해, 라마승이 읊는 경전이 ‘티베트 사자의 서’다. 죽은 자들을 위한 이 독송은 오래전 거친 자연이 선물한 깨달음이자 천장을 위한 의식의 노래인 셈이다.

사진가 박하선은 1997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쳐 천장을 촬영했다. 1990년대 티베트의 장례 풍습은 소문만 무성할 뿐 사진으로 남긴 이가 거의 없었다. 영적인 윤회를 기리는 장면을 카메라로 담는 행위 자체가 불경스러운 탓이다. 어렵게 촬영 허가를 맡아낼지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촬영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불온함을 견디는 것, 주검이 해체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일은 분명 무섭고 무거운 경험이다. 박하선은 왜 카메라가 망가지고 쫓겨나다시피 할 줄 알면서도 천장을 기록하고 싶었을까. 장례식의 모든 과정이 담긴 천장 연작의 어느 장면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좋은 사진인지 아닌지와 같은 말들이 무색해진다. 다만 육신의 무상함만이 선명할 뿐. 아침에 시작한 장례는 남은 뼈들과 잔여물을 곱게 빻아 마지막까지 공양을 마치면 보통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이 난다. 이제 한 영혼은 천장터를 비상하는 독수리 떼에 실려 윤회의 순례길에 오른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