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2025-12-12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최승호 시 '대설주의보' 전문.

지난 겨울, 우리는 자칫 잘못했으면 '백색의 계엄령'에 갇혀서 꼼짝달싹 못할 뻔 했다.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내리는 흰눈은 우리에게 축복이지만 그 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재앙이 될 수 있다.

느닷없이 내린 대설주의보로 우리의 손과 발이 묶이듯이 계엄령이라는 무지막지한 단어가 일상이 됐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세상이 다시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걷는 길이 빙판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눈을 치워야 할 때다.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폭설이 쏟아진 바닷가를 걷고 싶다. 아니면 폭설에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지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산사(山寺)를 향해 하염없이 걷고 싶다. 저기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이 몰려올 거니까.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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