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아일릿 윤아, 배우 이서환, 윤현민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하얀 그림자

때는 2006년 10월 3일 개천절이야. 그해 개천절은, 추석 연휴가 이어지는 징검다리 황금연휴였어. 연휴가 길다 보니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어. 딱 한 곳만 빼고. 바로 고속도로 상황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아지니 신경 쓸 게 많아. 그런데 거기서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도로가 있었어. 바로 여기.


서해대교야. 서해대교는 충남 당진과 경기도 평택을 잇는 해상교량인데, 길이가 7.3km야.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다리래. 근데 고속도로 상황실은 왜 하필 이 서해대교를 예의주시한 걸까? 바로 '안개' 때문이야. 이게 바다 위에 지어진 다리라 평소에도 해무가 자주 끼는데, 그날따라 안개가 심해도 너무 심한 거야. 그날 찍힌 CCTV 화면이야.


"오늘 가시거리 너무 안 나오는데. 일단 전광판에 '안개주의' 띄웁시다."
그때였어. 안개가 자욱한 서해대교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해. 그날 당진소방서로 걸려온 신고전화야.
"여기 서해대교 24번 전화국이에요. 3차로에서 추돌사고 나가지고, 대형사고예요 지금. 안개 많이 껴가지고. 상행선에서. 지금 빨리 오셔야 해요. 지금 계속 충돌해요. 터져요 지금. 불 붙었어요."
짙은 안개가 덮친 서해대교 한 복판에서 연쇄 추돌사고가 벌어진 거야.

"아침 7시 40분 정도에 구조 출동 신호가 울렸습니다. 차량 한 3대 정도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고 신고 접수받고 저희가 차량 탑승해서 출동하는 도중에 1~2분 지나고 나서 바로 한 6대, 10대, 그 후에는 차량 화재까지 발생했다고 무전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 이건 대형 사고다' 생각이 들고, 마음이 상당히 조급해졌었습니다 그때는."
-이종상, 당시 당진 소방서 구조대원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교통사고로 꼽히는 서해대교 29중 연쇄 추돌 사고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랑하는 부모님, 자식들을 만나러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서해대교 위에 있어.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었습니다. 이렇게 처참한 광경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종상, 당시 당진 소방서 구조대원
짙은 안개가 다리를 집어삼키고, 채 10m 앞도 보이지 않던 그날. 이 뒤엉킨 차들 사이에서 지옥을 마주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 서해대교 29중 연쇄 추돌 사고
2006년 10월 3일 새벽 5시 반. 전북 군산에 사는 김미 씨는 아들 민구를 깨우려 방문을 열었어. 추석을 맞아 서울에 있는 친정집에 가려고 고속버스를 예약했는데 늦잠을 잔 거야. 그런데 민구는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벌써 준비를 마친 상태였어. 이 아이가 민구야.

올해 14살. 중학교 1학년인 민구는 얼굴은 어려 보이지만, 키가 175cm야. 평소라면 민구는 군산에서 추석을 보내. 그런데 며칠 전 민구아빠가 허리를 삐끗해서 차례를 지내기 어려워졌어. 이참에 민구 아빠는 민구와 민구엄마가 서울 외가댁에 가서 푹 쉬고 오라고 했어. 그렇게 민구는 엄마와 함께 연휴 첫날인 10월 3일에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게 돼.

민구와 엄마는 맨 앞에서 두 번째 좌석에 나란히 앉았어. 잠시 뒤 버스가 출입문을 막 닫으려던 그때, 한 남자가 헐레벌떡 버스로 뛰어들었어. 남자의 이름은 정완선. 완선 씨는 어린 아들이 서울에 장기입원 중이라, 아이를 보러 가려고 버스에 탔어. 완선 씨는 민구가 앉은 자리에서 대각선 뒤쪽 창가 자리에 앉았어.

이땐 아무도 알지 못했어. 무심코 앉은 자리가, 이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같은 시각, 서울에 사는 35세의 은미 씨가 막 잠에서 깨어나. 그리고 안방에 가보니 부모님이 없어. 이분은 은미 씨의 어머니 조말예 씨야.

말예 씨는 어제 아침 일찍 남편이 운전하는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충남 서산으로 여행을 떠났어. 그런데 그런 부모님이 다음날에도 오지 않은 거야. 잠시 후, 은미 씨는 어머니 말예 씨의 전화를 받았어.
"은미야, 엄마야! 걱정했어? 미안해. 아직 서산인데 이제 출발하려고."
잠시 후, 오전 7시 40분. 새벽부터 시작된 안개는 이제 서해대교를 완전히 집어삼켜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쌩쌩 달리던 차들도 자욱한 안개에 속도를 슬슬 줄여가던 그때였어. 끼이익!!! 결국 연쇄 추돌이 일어난 거야.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을 만나볼게.

"쿵 하고 좀 세게 받음과 동시에 버스 유리창이 다 깨졌어요. 그렇게 충돌하고 나서 계속 뒤에서 차가 충돌을 하는 거예요. 제 기억으로는 한 다섯 여섯 번은 더 충돌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그 생각만 들었어요. 그만 박아라… 차 모양이 그냥 사각형으로, 앞뒤에서 박아버려서 진짜 짜부라졌죠."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고개를 돌려 밖을 본 완선 씨. 희뿌연한 안개 사이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졌어. 여기저기 비명이 난무하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 안에는 팔다리가 낀 채 절규하는 사람들이 보여. 도로로 튀어나온 사람들, 유리 파편을 뒤집어쓴 사람들까지.

"화물차라든지 뭐 이런 게 사람을 그 사이에 놓고 껴서 비명도 못 지르더라고. 바닥에 (사람들이) 많이 누워계시더라고요. 연료통이 폭발을 하거나 기름이 누유가 돼서 흘러나와서 불이 번지면…"
-홍성재, 당시 사고 차량 운전자
"무슨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장면처럼 이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긴 했죠."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 비극의 시작
그런데 이 비극의 시작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가벼운 접촉 사고였어.

오전 7시 30분 짙은 안개 사이로, 김 씨의 트럭이 3차로를 달리고 있어. 중간쯤 왔을 때, 뒤따라 오던 대형 트럭이 김 씨의 트럭을 들이받았어. 그 충격으로 25톤 대형 트럭은 끼익 한 바퀴를 돌아 2차선에 멈추게 돼. 순식간에 서해대교 3개의 차선 중 2개가 차단이 된 거야.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는 서둘러 차를 갓길로 빼야 해. 자칫하면 2차 추돌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냥 있었어. 도로를 반 이상 가로막은 채 사고 수습을 시작한 거야.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어. 뒤따라오던 차들의 연쇄 추돌. 근데 이건 시작에 불과해. 오전 7시 33분,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사고 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 맞아. 조말예 씨 부부가 탄 승용차야. 두 사람은 곧 마주할 운명을 꿈에도 모른 채, 신나는 트로트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었어. 그러다 결국, 이들은 앞에 차를 들이받았어.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부부는 크게 다치진 않았어. 부부는 일단 사고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에서 내리기로 했어.

한편 그 시각, 서해대교 입구로 대형 트레일러 한 대가 들어서. 운전자는 홍성재 씨. 성재 씨는 이 차에 해외 수출용 신차를 가득 싣고 평택항으로 가고 있어. 성재 씨는 무사고 경력 12년차 베테랑 탁송 기사야. 그런데 성재 씨도 오늘만큼은 안개 때문에 운전이 쉽지 않아. 거북이 가듯이 조심조심 다리 위를 지나고 있는데, 먼저 출발한 동료한테서 전화가 걸려와. 앞에 먼저 간 차가 뒤에 오는 차한테, 도로에 이상이 있으면 연락해 주곤 하는데. 그런 동료의 연락을 받은 거야. 동료는 "오다 보니까 사고가 났더라. 2차선, 3차선 꽉 막혀 있으니까 1차로로 와"라고 알려줬어. 그 말을 들은 성재 씨는 1차로로 진입했어. 그때였어.

"저는 '이 구간을 얼른 빠져나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1차로로 계속 갔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앞에서 확 나타나시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브레이크를 딱 밟았는데… 부딪히는 소리는 안 나고 안 보이더라고. 그 당시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홍성재, 당시 대형 트레일러 운전자
성재 씨는 중앙분리대를 박고 멈춰 섰어. 비좁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어. 바닥을 딛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조심스럽게 차량을 살피는데, 어디선가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려.
"제 차에서 내려서 앞바퀴 쪽 말고 뒷바퀴 쪽에 가 보니까, 아주머니가 다리 하나가 끼어 계시더라고요. 아주머니도 아마 피하다가 넘어지면서 그다음에 다리가 제 차 바퀴에 낀 것 같아요."
-홍성재, 당시 대형 트레일러 운전자
이 아주머니, 바로 말예 씨였어. 차에서 내린 후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피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다가 달려오는 카캐리어에 사고를 당한 거야. 마음은 급하고 머릿속은 하얗고 패닉 상태로 발만 동동 구르던 성재 씨.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성재 씨는 냅다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어. 그리고 하행선 차들을 가로막고 '유압 잭'이라는 리프팅 장비가 있는지 물었어. 이건 유압을 이용해 무거운 물체를 들 수 있는 장비인데, 트럭 운전자 중에는 간혹 이걸 싣고 다니는 경우가 있대. 하지만 유압 잭을 구할 수 없었어. 성재 씨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해.

"제 차 바퀴 밑에 다리 하나가 눌려 있으니까, 차를 움직이면 아줌마 다리가 더 망가질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머니 손을 잡고 한번 당겨봤어요. 당기니까 어떻게 다리가 쏙 빠지더라고요 다행스럽게도. 그래서 그 상태로 거기에다 둘 수는 없고, 좀 멀리 한 20미터 이상 앞으로 아주머니를 이렇게 끌고 옮겨놨던 것 같아요."
-홍성재, 당시 대형 트레일러 운전자
▲ 일촉즉발, 지옥이 된 현장
그런데, 말예 씨가 사고를 당한 직후, 카캐리어를 들이받은 차량이 또 있어. 바로, 완선 씨와 민구가 타고 있는 고속버스야.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고속버스가 직접 딱 쿵 했을 때는 솔직히 기억이 없었죠. 그러다가 유리창이 깨지면서 눈도 좀 찢어졌고, 턱 밑에도 좀 찢어졌고. 따가우니까 잠을 깼죠. 근데 계속 뒤에서 차가 충돌하는 거예요. 어느 시점에서 충돌이 없었고, 그러고 나서 밖을 봤죠. 이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그런데 버스에 큰 문제가 하나 생겨. 대형 탱크로리가 버스 우측면을 들이받으면서 하나밖에 없는 버스 출입구가 막혀 버렸어. 하얗게 질린 완선 씨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봐. 그리고 버스 뒤쪽 창문이 깨져있는 걸 발견했어.
"'불붙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옆에는 탱크로리고 '터지면 큰일 나겠다'… 버스가 마침 반대쪽(운전석 방향)에 가드레일이 있잖아요. 가드레일 높이하고 창가 높이가 거의 비슷했어요."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 깨진 창문으로 나가자고 소리쳤어. 승객들은 창문으로 탈출하기 시작했어. 완선 씨도 서둘러 창틀을 밟고 올라서는데, 그 순간 완선 씨를 멈칫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어.

"그때 옆에 어머니가 울고 있는 걸 봤어요. 아이가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의자 밑으로 들어가 있었어요. 의자 밑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피가 이미 흥건하게 많이 났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아이 몸 전체를 피가 적시고 있었으니까."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민구가 피범벅이 된 채로 의자 밑에 쓰러져 있었던 거야. 다른 승객들은 스스로 탈출하고 있는 상황인데, 왜 민구만 이렇게 크게 다친 걸까. 바로 이거 때문이었어.


카캐리어 2층에 차를 실으려면, 2층 바닥 상판이 아래로 기울어져 내려와야 해. 그런데 상판 끝이 뭉툭하면 바닥과 단차가 생겨 차를 싣기 어려워. 그래서 바닥과 맞닿는 상판의 끝 부분을 납작하게 만드는데, 하필 이게. 버스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온 거야. 버스기사와 창가석에 앉은 엄마를 간발의 차이로 비껴간 상판은, 복도 쪽에 앉아있는 민구의 머리로 날아들었어. 그 충격으로 민구는 의자 아래로 떨어진 거야. "제발 우리 민구 좀 살려주세요"라며 우는 엄마를 탈출하던 완선 씨가 발견한 거야.
"일단 어머니가 울고 있는데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까.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도와주겠다고 나선 완선 씨는 일단 의자 밑에 쓰러진 민구를 들어 올려봤지만, 쉽지가 않아. 거의 성인 남자와 맞먹는 체격에 몸이 축 처진 상태잖아. 부상을 입은 완선 씨가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어.
"일으켜 세울 순 있는데, 버스 밖으로 끄집어내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더 다칠까 봐. 이 아이를 제가 잘못 들고 꺼냈다가는, 아이가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제가 만약에 잘못하면 안 되잖아요."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결국 완선 씨는 민구를 겨우 일으켜 의자에 눕힌 뒤에 밖으로 나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어. 근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어. 왜냐, 사고 현장에서 또 한 번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거든. 앞차를 추돌한 한 화물트럭 엔진이 밖으로 튕겨 나오면서 주변 차들에 불이 붙기 시작한 거야.
그러는 사이 엄마 김미 씨는 여전히 민구 곁을 지키고 있어. "우리 아들 눈 좀 떠봐. 엄마가 정말 미안해" 하면서. 사실 아까 버스에 탈 때 아들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어. 민구는 맨 뒷자리에 앉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그냥 앞자리에 앉자고 한 거야. 사실 김미 씨는 다리가 조금 불편해. 그런 엄마의 마음을 금세 알고, 아들은 별다른 불평 없이 앞자리에 앉았어. 엄마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아.
불길은 서서히 버스로 옮겨 붙기 시작했어. 아무래도 이제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 거 같아. 엄마는 민구를 꼭 끌어안고 이런 말을 전했어.

"아이한테 (마지막) 얘기를 했어요. '의식은 있겠지' 이런 생각에. 민구야 사람들이 저기에 불나서 터질까 봐 못 들어온대. 엄마 너 못 들거든. 너 항상 건강해서 예뻤는데, 이럴 때는 네가 체격이 작았으면 정말 좋겠다… 저거(탱크로리) 터지면 우리 죽을 텐데, 좀 뜨겁겠지만 너랑 나랑 같이 갈 텐데 어떻겠냐. 아빠가 참 안 됐다…"
-김미, 민구 어머니
▲ 히어로의 등장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갑자기 어떤 남자가 버스 창문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민구를 번쩍 들어 안아.

"제 기억으로는 그때 슈퍼맨 같은 사람 한 분이 계셨어요. 반대쪽 차선에서 넘어오셔서 사람들 다 구해 주시고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 도와주시고. 그분이 사람들을 많이 구출하셨죠. 창문으로. 너무 감사한 분인데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왔다갔다 하시는 것만 봤어요."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하행선을 지나던 웬 남자가 중앙분리대를 넘어와서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이름 모를 영웅의 등장에, 완선 씨를 비롯한 몇몇이 힘을 보태기 시작해. 민구를 꺼내고 도로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을 불길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이동시켜. 그중엔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구덩이 안으로 뛰어든 사람도 있었어. 바로 카캐리어 운전자 성재 씨야.

"우리 화물차는 어디 장거리 가면 거기서 자려고 이불 같은 걸 하나씩 가지고 다니거든요. 그거 꺼내다가 제 머리에 뒤집어쓰고 바닥에 누워계신 분들 한 명씩 전부 앞으로 당겼죠. 저 혼자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구조 작업을 같이 했어요."
-홍성재, 당시 카캐리어 운전자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작은 영웅들이야.
▲ 구조대가 늦은 이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사고 현장에서 구조활동 중인 사람들은, 운전자와 탑승객들이야. 구조대원은? 119 최초 신고 시간은 오전 7시 40분이야. 20분이 넘도록 구조대가 오지 않고 있어.
시간을 다시 앞으로 돌려 오전 7시 40분, 당진 소방서에 출동 명령이 떨어진 그 때야. 밤샘 근무를 하고 퇴근을 앞두고 있던 이종상 대원은 사고 소식에 동료들과 함께 출동했어. 당진 소방서에서 서해대교 입구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 다행히 입구까진 별문제 없이 도착했어. 이제 사고현장까지 남은 거리는 약 1km. 그런데, 다리로 진입하던 소방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지금 19년이 흘렀는데요. 지금도 기억하기로는 진짜 정확하게 딱 제가 앉아있는 곳에서, 지금 PD님 앉아있는 그 거리. 그 정도밖에 가시거리는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듭니다. 한 3m?"
-이종성, 당시 구조대원
소방대원은 원래 시야확보가 어려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런 대원들조차 당황할 정도로 안개가 짙었어. 그래도 다른 차들의 방해 없이 빠르게 현장까지 갈 수 있는 '갓길'이 있잖아. 그런데, 갓길이 완전 주차장이야. 혼잡을 피해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사람들이 갓길을 점령한 거야.

차에서 내려 일일이 창문을 두드려가며 부탁하지만, 쉽지 않아. 소방차의 너비가 2.5m 정도인데, 워낙 차들이 많고 서로 엉켜있다 보니, 도저히 틈이 나지 않는 거야.
"빼주고 싶은 차량도 있었지만, 비켜줄 수 있는 공간이 그쪽에는 전혀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그 차를 간신히 옆으로 치우고 또 가다 보면 또 앞에 차량이 또 나오고. 계속 그게 반복이 되는 겁니다."
-이종성, 당시 구조대원
그래도 어찌어찌 차량 틈새를 비집고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게 말썽이야.

"저희가 1차 신고 때 구조대하고 구급차가 먼저 출발하고 난 다음에 소방차들이 그 뒤로 따라왔는데, 저희 차들이 다 붙어서 가는 차량은 아니고 중간중간 틈이 있다 보니까, '소방차를 따라가면 조금 더 빨리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저희 차 뒤로 바짝 붙어 오는 분들도 있고. 저희가 내려서 일일이 앞에 있는 차량 빼면서도, 뒤에 차량 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얘기도 했었거든요. 따라오지 마시라, 지금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위험하다, 이렇게 따라오시다가 우리가 급정거하게 되면, 뒤 분들도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마시라고 말도 전해드리고 했는데. 그런 분들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이종성, 당시 구조대원
이렇게 양심을 저버린 몇몇 사람들 때문에, 1분, 2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지나가. 결국 대원들은 구조 장비를 나눠 들고 무작정 뛰기 시작해. 장비 무게만 무려 60kg.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흘러.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누군가 구조대원들의 팔은 붙잡아.
"우리 남편이 운전석에 다리가 꼈어요. 얼른 좀 구해주세요."
"우리 딸내미가 팔이 부러진 것 같아요. 빨리 어떻게 좀 해줘 봐요."
민구, 말예 씨가 다친 사고현장 뒤로도, 수십대의 차들이 추돌사고로 뒤엉켜 있었던 거야.
"화재 난 곳 말고 그 뒤편으로 앞뒤로 부딪치고 추돌이 일어나서. 차에 끼어 있으셨던 분들, 자가 탈출이 어려우셨던 분들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구조대상자를 다 일일이 손으로 끄집어내서 옆에다 안전한 곳에 놔드리고, 몇 발짝 안 가서 또 보면 끼어 있으셨던 분들이 또 있으세요. 그럼 또 그분들 가면서 다 구조를 했었습니다."
-이종성, 당시 구조대원
그럼 혹시, 이 상황에서 다른 길은 없었을까? 반대편 하행선을 이용한다면? 좀 더 빠르게 사고 현장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번엔, 당진 쪽이 아닌 평택 쪽에서 나서야 해.

오전 7시 50분경, 버스 안에서 민구가 사경을 헤매고, 말예 씨가 구조팀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 시각. 평택에서 구급차 3대가 출동했어. 대한응급환자이송단 평택지부의 구조요원들이야. 사고 현장까지는 5분컷. 첫 번째 구급차에 타고 있던 곽요환 요원이 액셀을 밟았어. 그런데 1분 뒤, 힘차게 달리던 구급차가 서해대교 하행선 방향 입구에서 멈춰 섰어.

"저희가 하행선을 타고 내려가는데 평택 IC 입구 들어서자마자 차가 움직이지 않았어요. 서해대교가 사고가 나서 그 현장을 구경하시느라고, 갓길이고 뭐고 차들을 다 세워 놓은 상태에서 어떻게 뚫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이걸 어떻게 가지?'"
-곽요환, 당시 대한응급환자이송단 평택지부장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골든타임을 지킬 수 없게 된 거야.
"평상시 같은 경우는 아무리 밀려도 5분에서 7분 그 사이면 그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한 20분에서 23~24분 정도 걸렸을 거예요. '비켜 주십시오. 비켜 주십시오' 앞에서 대원이 신호해 가면서 차를 뚫고 나가니까…"
-곽요환, 당시 대한응급환자이송단 평택지부장
결국 사고가 발생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곽 요원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그리고 버스 뒤에서 누군가의 절실한 구조 요청이 들려와. 서둘러 가까이 다가가자, 소형 트럭 한 대가 보여. 바로 이 차야.

전면부가 종잇장처럼 구겨졌어. 여기에 사람이 끼어 있는 거야. 그를 구하려는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번쩍 튀어올라.

"버스에서 불이 났어요 뒤쪽에서. 불꽃이 약 3~4m 정도, 접근할 정도가 못 됐어요.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트럭에 타신 그 운전자분 구조를 못 한 게 여태까지 트라우마로 남고 있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왜 그런 지 알아요? 사람이 생으로 불타는 거 보셨어요? 저는 그 현장을 목격했는데, 그게 아직까지 못 구해준 게 아쉽다는 거. 그분한테는 진짜 미안하고… 거기에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있습니다. 서해대교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곽요환, 당시 대한응급환자이송단 평택지부장
수많은 삶과 죽음이 단 몇 초 사이로 엇갈렸어. 갓길을 비워두는 사소한 배려만 있었어도, 내 가족의 일이란 생각으로 조금만 양보해 줬더라면. 모두 구할 수 있는 소중한 생명이었어.
▲ 처참했던 그날의 기억
잠시 후, 첫 신고가 들어온 지 40분이 지난 오전 8시 20분 경이야. 커다란 장비를 진 대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고 현장으로 들어 서. 이종상 대원의 눈에 들어온 현장은, 지옥 그 자체야.

"그때 당시 구조대원분들 모두가 그 앞을 딱 보는 순간 구조를 한다기보다는 진짜 절망감이 먼저 앞섰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습니다. 화재 현장 안에 있는 수많은 차량을 봤을 때, 아… 진짜 처참하다는 그런 느낌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종상, 당시 구조대원




여러 현장을 다닌 베테랑 대원조차 처음 보는 참담한 현장. 하지만 대원들은 포기할 수 없어. 단 한 명만이라도 살릴 수 있길, 간절한 마음으로 수색을 시작해. 하지만 생존자는 없었어. 구석구석 안을 살폈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이미 백골이 된 시신들 뿐이야.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그분이, 저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딱 봤는데, 트럭과 트럭 사이에 옆으로 전도되어 있던 승용차였습니다. 완전히 불에 타서 거의 백골 상태였던 그분이 있었습니다… 그 심정은 사실 그때 겪어보지 않았으면, 진짜 이루 말로 표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이종상, 당시 구조대원
그마저도 뼛조각이 다 흩어져 있어서, 몇 명인지 가늠조차 안돼.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려 기를 쓰고 달려왔는데. 할 수 있는 건 시신을 수습하는 일뿐이었어.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참담한 소식이 전해졌어.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한 생존자 중 한 명이, 결국 세상을 떠난 거야. 바로 민구였어.

"놀랐죠. 많이 놀라기도 했고, 사실이 아니길 바라기도 했고. 한동안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그런 감정을 느껴본 거니까."
-정완선, 고속버스 마지막 탑승자
민구는 부상자 중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했어. 근데 도착한 시각이 오전 9시야. 구급차에서만 무려 50분을 보낸 거야.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갓길이 꽉 막혀 있었대. 결국 민구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어. 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잃고도 소리 내어 울 수 없었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온 병원을 뛰어다니고 있었거든. 또 간신히 화마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생존자도 있었어.

지옥 같은 현장에서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난 경민 씨(가명). 그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대입 수시 면접을 위해 서울로 향하던 길이었어. 안타깝게도 대형 트럭들 사이에 낀 경민 씨 차량에선 아내와 아들이 유골 상태로 발견됐어.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이 사실을 경민 씨에게 알리지 못했어. 하지만 얼마 후 경민 씨도 아내와 아들의 곁으로 떠나게 돼.
서해대교 29중 연쇄 추돌사고는 12명의 사망자, 50명이 넘는 부상자를 남겼어.
▲ 대형참사, 왜 미리 막지 못했나
이 대형참사, 사전에 막을 순 없었을까?
최초의 추돌 사고는 안개 때문에 일어났어. 평소 서해대교의 가시거리는 1km 이상이래. 하지만 그날 가시거리는 61m에 불과했어. 게다가 운전자들이 직접 느낀 가시거리는 약 10m 정도였대. 하지만 그날 운전자들을 위한 정보는 '안개주의 감속운행'이 8글자가 적힌 도로 전광판뿐이었대. 물론 안개라는 게, 일시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분포 자체가 넓으니까 어디까지 통제해야 할지 애매한 게 사실이야. 그래서 외국은 바다나 호수 위에 도로를 낼 때 안개에 대비해 이런 걸 설치한대.


방무벽이라고 하는 건데, 안개 거름망 같은 거야. 이 막으로 안개의 입자를 물방울로 바꿔 안개가 도로에 머무는 걸 예방한다고 해.
하지만 1년에 30일 이상 짙은 안개가 끼는 이 서해대교에는, 그 어떤 안개 대비책도 없었어. 사고 이후 유족들은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지휘통제 의무를 다하지 않은 한국도로공사 측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어. 하지만 도로공사 측은 감속 운행을 하라는 안내를 했는데도 사고가 난 건, 이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들의 책임이라는 입장이야. 수십 군데 보험사가 얽힌 긴 법정공방 끝에 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렸어.
"안개는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위험성을 예측하기 어렵고, 도로의 관리상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공사 측은 기상상태를 안내하고 안전운전 유도에 최선을 다했다. 도로공사 측 책임은 없다."
명절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 가족들, 그들을 기다리던 부모, 친구, 친척들까지, 모두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어.
▲ 씻을 수 없는 상처, 반복되지 않으려면?
사고가 난 지 어느덧 19년이 지났어. '꼬꼬무'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생존자, 유가족, 목격자 등 여러 사람에게 연락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롭고 힘들다"고 했어. 그런 가운데 아주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유가족 분이 있어. 카캐리어에 다리가 끼는 사고를 당한, 조말예 씨의 딸 박은미(가명) 씨야.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켰는데,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서해대교에서 사고가 났다고. 연쇄 추돌 사고가 났다고. 계속 뉴스 속보가 뜨는 거예요. 불이 나고 서해대교가 아수라장이더라고요. 기분이 이상해서 엄마아빠한테 전화를 했죠.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너무 큰 교통사고가 났구나. 사고 현장까지 가는데 되게 막혀서, 병원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던 거 같아요. 3시간 이상 걸렸던 거 같고. 도착해 보니 엄마가 응급실에 계셨고, 의사가 '어머니 많이 다쳤고, 서울에 가서 수술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박은미(가명), 조말예 씨 딸
하반신 전체가 복합 골절된 엄마는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야 했어. 그런 엄마를 모시고 대학병원으로 향하는데, 구급차 안에서 엄마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해. "은미야, 너희 아빠 죽었을지도 몰라"라고. 그 말을 남기고 말예 씨는 곧 의식을 잃어.
"전체 사고에 대해서 물어볼 경황이 없어서, 큰오빠한테 가서 '아버지 찾아라. 어느 병원이든 계시지 않겠냐' 했고, 전 앰뷸런스 타고 서울로 올라갔고."
-박은미(가명), 조말예 씨 딸
아빠를 찾는 일은 큰오빠가 맡았어. 그 사이 대학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수술을 시작해.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아빠가 무사하길, 엄마가 살아서 수술실에서 나오길, 빌고 또 빌었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밤 11시, 큰오빠한테 전화가 걸려와.
"아버지 찾았다. 영안실에서."
구급대가 발견할 당시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고 해. 설상가상 신분증과 소지품이 발견되지 않아서, 아버지는 무연고 시신으로 홀로 영안실에 있어야 했던 거야.

"아버지 마지막을 못 봤다는 생각이 괴로웠고, 더 걱정은 엄마까지… 엄마가 그때 68세셨거든요. 적지 않은 나이인데, 수술하다가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 아버지에 이어서 엄마까지 그러면.. 삶이 바닥을 치는구나, 일상이 바닥을 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박은미(가명), 조말예 씨 딸
어느덧 수술이 시작한 지 13시간째.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어. 은미 씨의 바람처럼, 엄마는 무사히 살아 나올 수 있었을까. 말예 씨의 근황은 어떨까.

"서해대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서산에서 아침을 먹고 오려다가, 휴게소나 서울 와서 먹자고 해서 새벽에 나섰거든. 아침 일찍 사고가 났어요. 아침 먹고 천천히 왔으면, 이런 일이 없었지. 내 팔자지 뭐. 사고 나려고 일찍 출발했지. 그러니까 입원하고 며칠 있다가, 의사가 말을 하더라고요. 다리에 상처가 나서 썩어 들어가니까 잘라야 한다.. 그래서 절단한 거예요."
-조말예, 당시 사고 피해자

그날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은 말예 씨. 말예 씨는 사고 전, 밝고 호탕한 성격에 여행 가는 걸 좋아했어. 하지만 지금은 밖에 혼자 나가는 것도 힘들어. 삶이 송두리째 바뀐 건 은미 씨도 마찬가지야. 그날 이후 은미 씨는 직장도 관두고 엄마를 간호했어. 여전히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그날의 기억이지만,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래.

"모든 일들은 그렇게 되려고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그런 대형사고의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죠. 누구도 완벽하게 안전하게 살 수는 없구나…"
-박은미(가명), 조말예 씨 딸
사고는 내 가족, 내 친구, 당장 내일의 나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라는 거. 이번 이야기를 듣는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 나오셨다고 해.
12명의 소중한 생명이 안개와 함께 사라진 그날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어. 30억 원을 투자해 시스템도 구축하고 연구 인력도 대거 투입했어. 새로운 관측 장비를 들여서 안개 예측을 좀 더 정확하게 하겠다는 거야. 근데 이 계획은,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무산되고 말아. 안개 예보의 적중률이 낮아도 너무 낮았대. 그래서 부랴부랴 수억 원을 들여 안개 저감 장치를 연구,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어. 이번엔 기술 부족의 이유로. 그러는 사이 비극은 또 찾아왔어.


"인천 영종대교에서 차량 106대가 잇따라 들이받는 믿기 어려운 대형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1km 구간에 걸쳐 차량 106대가 연쇄 추돌했습니다."
"한 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에서 차량들은 앞에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그대로 달리다 연쇄 추돌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2015년 발생한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 사상자는 무려 65명. 서해대교 참사와 똑같이 안갯길에 벌어진 연쇄 추돌사고였어.
사고 후 전문가들은 "9년 전 서해대교 사고 때 안개 대비책만 마련했어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정부는 영종대교 사고 이후 또다시 예산을 들여, 새 기상 관측 장비를 도입하고, 도로 전광판을 추가 설치하는 등 안개 대비에 나섰어. 왜 우리는 늘 소중한 걸 놓치고 나서야 깨닫는 걸까.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거다'라는 말이 있어.
서해대교 연쇄 추돌사고는 양심을 저버리고 갓길을 점령한 운전자들, 부족한 안개대비 시설, 국가의 안전 시스템 부재까지, 이 모든 게 얽히고설켜 벌어진 명백한 인재야. 이제라도, 이 지긋지긋한 반복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길. 안일함과 부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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