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리우드(Bollywood·봄베이+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인도 영화 산업이 인공지능(AI)을 전격 수용하며 할리우드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가와 배우들의 파업을 통해 AI 도입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달리, 인도는 저예산 독립영화부터 대형 상업영화에 이르기까지 AI를 제작 공정의 핵심 도구로 빠르게 편입시키고 있다.
BBC는 29일(현지시간) 지난 5월 개봉한 비벡 안찰리아 감독의 영화 <나이샤>를 AI가 영화 산업의 진입 장벽을 얼마나 낮췄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이 작품은 기획 단계에서 챗GPT를 아이디어 구상에 활용하고, 시각화 과정에서는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를 통해 전체 분량의 약 95%를 구현했다. 제작비는 기존 볼리우드 영화의 약 1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 ‘나이샤’는 실존 배우가 아닌 AI로 생성된 캐릭터임에도 실제 주얼리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며 주목을 받았다.

AI 도입은 대형 제작사와 스타 배우들 사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디에이징’ 기술이 대표적이다. 73세 원로 배우 맘무티는 영화 <레카치트람>에서 AI 기술을 통해 30대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해 흥행 성과를 거뒀다. 배우 사티아라지는 BBC 인터뷰에서 “AI가 배우의 수명을 연장하고 액션 주연을 계속 맡을 수 있게 해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인도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마하바타르 나르심하>의 연출자는 최근 타임스 오브 인디아(TOI)와의 인터뷰에서 “AI는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전반적으로 축복이 될 도구”라면서 “특히 인도처럼 콘텐츠 소비와 수요가 폭발적으로 큰 시장에서는 제작 속도를 앞당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아이디어를 더 빠르게 스크린으로 옮기게 해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AI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의 AI 모델이 주로 서구권 데이터로 학습돼 인도 특유의 신화적 세계관이나 지역 미학,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구한 세니압판 감독은 BBC에 “AI는 지역적 특성이 강한 자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며, 인간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표현은 여전히 대체될 수 없다”고 말했다.
AI 활용을 둘러싼 윤리적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작 영화 <란자나>의 타밀어 버전이 2025년 8월 재개봉됐는데 AI를 통해 비극적인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변경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원작 감독의 동의 없이 제작사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인도 영화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법적·제도적 장치의 미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인도에는 AI를 통한 명의·목소리 도용을 명확히 규제하는 법률이 마련돼 있지 않다. 고 사티야지트 레이 등 거장 감독들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으나, 유족의 동의 여부와 별개로 법적 권리관계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인도 영화 산업에서 AI는 사전 시각화, 사운드 디자인, 사투리 교정, 음성 복제 등 제작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AI는 제작을 빠르게 만들고 새로운 창작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산업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면서도 “연기와 감정, 삶의 경험, 문화적 뉘앙스는 여전히 인간 예술가의 영역”이라고 평가했다. 아룬 찬두 감독도 BBC에 “AI로 만든 영화는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지만 더 세밀하고 본질적인 부분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라며 “AI는 영화 제작의 주체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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