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1부] 기후전쟁, 요동치는 산지 (6) 가축질병 덮친 ‘기후감염’ 2023년 10월 서산서 최초 발견 서해안서 시작…전국으로 퍼져 항구 통해 흡혈 매개곤충 유입 가을철 기온 오르자 활동 확산 온난화에 온대지역도 안심 못해 축사·항만서 방제 적극 펼쳐야

기후변화는 축산업에도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바뀌면서 매개체성 동물질환이 극성이다. 가축의 피를 빨며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진드기 등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활동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럼피스킨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대표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 그림자가 어떻게 소·돼지·닭·벌을 사육하는 농가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걸까. 기후변화로 가축이 질병에 노출되고 감염되는 시대, 지구온난화와 주요 가축전염병 간의 연관성, 이상기후에 따른 가축 생산성 하락 등을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럼피스킨, ‘무지(無知)에서 오는 공포’=“너무 무서웠어요.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수십마리 소의 피부에 물혹 같은 결절이 다량 생겼더라고요. 뭔가 큰 사달이 났다는 생각에 바로 방역기관에 신고했습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의 한 한우농가는 2023년 10월19일 새벽에 겪은 일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이날은 한국에서 ‘럼피스킨’이라는 가축전염병이 최초로 발생한(신고일 기준) 날로 기록됐다.
럼피스킨은 소나 물소에게 발생하는 질병으로, 피부와 내부 점막에 혹덩어리와 같은 작은 결절이 생기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름 속 영어 단어 ‘럼피(lumpy)’도 ‘거칠다, 울퉁불퉁하다, 뭉쳐 있다’는 뜻이다. 초기에는 41℃ 이상의 고열, 눈물, 콧물, 침 흘림이 나타난다. 주로 침파리·모기와 같은 흡혈 매개곤충이 여러 가축을 옮겨 다니며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최기항 서산시농업기술센터 동물방역팀장은 그날 날씨를 바로 회상해낼 만큼 기억이 또렷하다. 그는 “10월 중순이 되면 으레 쌀쌀해져야 하는데, 한낮 더위가 계속됐고 모기도 오랫동안 기승을 부렸다”면서 “질병 확진 판정 소식을 듣고 그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두차례 ‘럼피스킨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기억이 떠올라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럼피스킨의 전염 속도는 빠른데 백신접종을 놓을 인력은 부족해 방역당국은 애를 먹어야 했다. 최기중 서산태안축산농협 조합장은 “당시 백신을 접종할 수의사가 부족해 수의사 출신인 내가 직접 태안과 서산을 오가며 주사를 놓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처음 상륙한 럼피스킨은 서해안에서 시작해 동부와 남부를 가리지 않고 전국을 강타했다.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원 양양, 전남 고흥, 경북 예천을 포함해 47개 시·군에서 모두 131건이 다발했다.
사회적 비용도 막대했다. 2023년말 기준 살처분마릿수는 6455마리로 피해농가 보상금사업에 쓰겠다며 증액한 예산만 360억원에 달한다. 올해까지 백신 의무접종이 이뤄졌고 질병 발생에 따른 소비 위축, 한우고기 이미지 훼손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럼피스킨, 서해안에서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국내 럼피스킨은 전파 초기 왜 서해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을까. 이유는 두가지로 집약된다. 그해 가을 기온이 유난히 높았고, 질병 발생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입항이 잦은 항구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
최 팀장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서산 대산항은 석유화학 원료 등을 싣고 중국·동남아시아·중동을 오가는 배의 물동량이 상당히 많은 곳으로 꼽힌다”면서 “지역 방역 전문가도 항구를 럼피스킨 매개곤충이 유입된 경로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다”고 했다.
실제 ‘2023 럼피스킨 역학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당진·서산을 비롯한 전북 부안, 전남 무안·신안, 경남 창원 등 6곳은 모두 9∼42㎞ 반경에 항구가 있어 선박을 통한 질병 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가을철 이상고온도 한몫했다. 2020년 10월 서산의 평균온도는 13.3℃였으나 2023년 10월엔 15℃로 치솟았다. 인근 발생지역인 당진 역시 같은 기간 13.3℃에서 15.3℃로 무려 2℃ 상승했다.
세계 기후·환경 전문가들은 지구의 온도 상승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도가 1℃만 올라가도 기상변화가 극심해질 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과 식량 안정 생산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서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는 최근 전세계 기온 상승에 따라 매개체성 질병 발생의 최대 위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열대지역에서 번성하던 흡혈곤충이 활동 반경을 온대지역으로까지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온난화가 이어지는 만큼 신종 매개질병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매개체가 왕성하게 번식하는 기간엔 방역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제언한다.
복은영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질병방역과 수의연구사는 “소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기 매개 전염병으로는 럼피스킨 외에도 아까바네병·소유행열·츄잔병·블루텅병을 들 수 있다”면서 “이같은 매개체성 질병이 국내에 유입되지 못하게 하려면 매개곤충이 번식을 시작하는 4∼5월 축사·항만 등지에서 해충 방제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서산=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