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자연과학] 인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2025-05-29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른 아침, 논마다 트랙터를 이용해 논갈이를 하고 있다(사진 1). 그 뒤에서 날아오르지도 않고 그대로 논 위에 남아있는 새들. 지나가는 농부에게 “쟤네는 미꾸라지 먹으러 왔나요?” 물어보니, 지렁이랑 개구리, 올챙이들을 먹는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살금살금 몸을 숙이고 다가갔지만, 트랙터가 큰 소리를 내며 움직여도 꿈쩍 않던 새들이 우르르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중백로, 쇠백로, 황로와 같은 백로과 조류와 제비 등 새가 한두 종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새들은 트랙터가 논을 갈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농기계라는 인공적인 존재와 자연의 야생 생물이 만들어낸 뜻밖의 공생이다. 인간은 새들에게 먹이를 손쉽게 제공하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울산 인근 KTX역 구조물과 비둘기 서식지

울산 인근 KTX역 건물 하부, 고속철도 레일이 지나가는 구조물 아래의 콘크리트 빈 공간은 비둘기들에게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안전한 둥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본래 철도 시설물로 설계된 이 공간은 비둘기에게 천적이 없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서식지로 인식되었다. 이로 인해 구조물 아래 인도에는 비둘기 배설물이 쌓이는 문제가 있지만, 도심 속 구조물이 새로운 대체 서식지 역할을 하게 된 예이다.

도쿄 도심 까마귀 개체 수 증가와 관리

2000년 도쿄 도심에 까마귀가 약 3만 마리로 증가했는데, 경제가 성장하면서 배출된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는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요일을 인식하고 그 요일에 집중적으로 출몰하였다. 도심지에서 이는 사회문제가 되어 음식물 쓰레기를 아침 일찍 수거하거나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는 노란 봉투를 도입하고 쓰레기양을 줄이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유료화했다(강구열).

뉴욕 맨해튼 붉은꼬리매 ‘팔레일 말(Pale Male)’

뉴욕 맨해튼 927번가 12층 아파트 건물의 난간은 원래 건물 외관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이곳에 1993년부터 30년간 붉은꼬리매가 이 구조물을 번식지로 삼았다. 2004년, 건물 관리위원회에서 그 둥지를 제거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항의로 둥지가 복원되기도 하였다. 비록 2023년 5월 “팔레일 말“은 노화로 죽었지만 이 사례는 다큐멘터리와 미디어, 어린이 도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도시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출처: Fadulu; 사진 2).

인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은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는 백로들, 콘크리트 구조물을 둥지 삼는 비둘기,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로 인식하는 까마귀, 그리고 고층 아파트 난간에 보금자리를 튼 붉은꼬리매까지, 이 모든 사례는 인간이 만든 환경이 자연과 생물들에게 새로운 생존 전략과 서식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공생의 가능성을 찾는 일은 결국 세심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주의 깊은 시선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강구열. (2022년 5월 10일). ‘3만→1만’… 日 도쿄, 쓰레기 줄자 까마귀도 줄었다.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220510503672

Fadulu, L. (2023년 5월 17일). Pale Male, the Famous Central Park Hawk, Is Dead at 32. Maybe.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23/05/17/nyregion/pale-male-hawk.html

권춘봉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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