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았을 때, 기쁨·슬픔·분노·동정 등 가슴에서 뭔가가 ‘일어나는(興)’ 사람이라야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詩)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컥’이든 ‘와락’이든 ‘슬며시’든 가슴으로부터 뭔가를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사람을 살아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시는 시대를 반영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한다(觀). 시는 함께 노래 부르며 단합하게 하고(群), 시는 횡포를 부리는 자를 향해 원망을 드러내게 한다(怨). 여기서 ‘흥(興)·관(觀)·군(群)·원(怨)’이라는 말이 나왔다. 시의 효용성을 정의한 공자의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한 명언 중의 명언이다.

독재국가일수록 시와 노래를 통제한다. 국민들의 가슴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국민들이 사회상을 바르게 보고, 당차게 원망하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과거의 독재정권이 김지하의 시집 『오적』의 출판을 통제하고, 걸핏하면 금지곡으로 묶어서 노래의 확산을 막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어남’ 즉 ‘흥(興)’이 많을수록 건강하다. 우리 국민은 제 흥에 겨워 세상을 흥하게 해왔다. 국민의 흥을 살리는 정치를 하라! 흥만 살려 놓으면 나머지는 국민이 알아서 다 한다. 얼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