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삽니다

2024-10-17

10월, 어느 주말. 산 입구에서 정상까지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도착한 그곳은 ‘꽃밭’이었다. 정확하게는 집을 나선 지 5시간 만에 ‘꽃밭’에 도착했다. 산에 피는 꽃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그 꽃을 보기 위해 수십, 어쩌면 수백 명의 사람이 산 중턱에 우리와 함께 갇혀있었다.

산 중턱에 갇힌 이들 중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은 이미 꽃밭이 어떤 모양새이며, 꽃의 개화 상태가 어떤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큼 SNS 속 사진을 수십 번도 넘게 확인했을 것이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SNS 속 그 사진들과 같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이 정체 구간에서의 희생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라는 동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넓은 대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꽃들과 그 사이사이 심겨있듯 몰려 있는 인파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으로 본 꽃은 기대만큼 풍성하지도, 색감이 예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핸드폰 카메라 속 렌즈로 본 꽃밭은 수없이 보며 기대했던 SNS 속 사진 같은 색감을 지닌 완벽한 풍경 사진이 되었다. 그 결과물 덕에 나 역시 SNS에서 유명한, 10월 꼭 가야 할, 꽃밭에 다녀온 사람이 된 것이다.

해발 900m. 이곳에는 정말 꽃밭밖에 없었다. 산 초입에는 그 흔한 카페는커녕, 식당 정보도 적어 결국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꽃 구경에 대한 여운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며 핸드폰에만 남게 되었다.

현재,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그 지역의 전체 인구수는 6만이라고 한다. 지난해 축제 방문객 수는 21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예상된다고 한다. 지역축제가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 아닌, 일회성 방문으로 끝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나도 이 꽃 축제의 소비자이지만, 절로 삐딱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 꽃밭이 뭐라고.’

현재 많은 지방에서는 꽃 심기에 한창이다. 대표 꽃구경 명소였던 벚꽃과 유채꽃에서 코스모스, 해바라기, 튤립, 작약, 개미취, 구절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꽃 축제의 성패는 접근성과 프로그램의 구성보다는 ‘인생샷’에 의해 결정된다. 인생에 길이 남을 만큼 잘 나온 사진을 뜻하는 ‘인생샷’은 SNS 주 이용자인 젊은이들의 전유물에서 메신저 어플의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중장년층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하며 다양한 연령대로 확대되고 있다. 모두가 인생샷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인생샷 만큼 잘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어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손쉽게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된 지금, 우리 역시 그 엿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만든 거대한 포토존에서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면 한 달, 어쩌면 1년이 편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꽃밭에 사진을 찍으러 간다.

꽃은 피고 지기 마련이거늘, 이 일회성 축제가 무분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삐딱한 시선과 달리 각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회를 적극 활용 중이다. 경남 거창군의 ‘감악산 꽃&별 여행’ 축제에서는 특산물인 사과를 판매한다. 경기 가평군은 ‘자라섬 봄꽃 페스타’에서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운영해 5억22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볼거리로 시선을 끈 지자체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해당 지역에서의 정착까지 도모하고 있다. 한철 피는 꽃이 지역경제 활성화부터 생활인구를 증가시켜 지방 인구소멸 위기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저탄소 친환경 농업의 일환으로 경관겸용 풋거름 작물을 심는다. 풋거름 작물은 화학비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농업 중 하나로 대표적인 예로 청보리와 유채가 있다. 농한기인 겨울에 심었던 작물이 봄에 싹을 틔우면 드넓은 평야에 펼쳐진 장관을 보기 위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꽃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부 사람과 환경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고 있다. 삐딱한 시선을 거두고 보니 보였다. 내가 본 그 꽃 역시,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 우리는 고향에 모여 살 수 있게 제 소임을 다 하고 있음을. 찍어온 사진들을 보며 회상해본다. 꽃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꽃 나들이를, 꽃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는 특산물 쇼핑을 제안하며 얼마 남지 않은 10월, 상생의 축제를 추천한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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