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 필사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당시 정국이 헌법 제77조에 명시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이후 대통령은 탄핵소추 됐는데,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던 국무총리마저 탄핵소추 돼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초유의 상황이 됐다. 탄핵소추와 권한 대행은 모두 헌법에 근거한 것이며,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탄핵 사건을 다룰 때도 헌법의 여러 조항들을 근거로 심판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대한민국헌법 전체 조항을 면밀히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근간을 스스로 알고 싶었을 것이다.
대개 법은 필요한 때 해당 조항을 찾아보지만, 이번엔 필자도 대한민국헌법을 전문부터 부칙까지 정독해봤다. 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대한민국헌법은 조문의 체계성과 내용의 심오함을 느끼게 했다.
헌법은 한 나라의 최고의 법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1948년 5월에 처음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해 제헌국회가 구성됐고, 제헌국회는 7월 12일 헌법을 제정해 7월 17일 공포됐다. 이후 9차례 개정되었지만, 헌법적 가치는 그대로 유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으로 전부개정된 제10호 헌법이며, 총 10장 130조로 돼있다. 헌법은 전문에 이어 제1장 총강에서 주권, 국민, 영토를 규정한다. 국회나 정부보다 국민을 제2장에 먼저 두고 있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 중에서는 권리를 먼저 규정했다. 그리고 입법부인 국회를 제3장에 설명한 후에 최고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설명하고, 그 뒤에 사법부가 나오는데, 이런 순서는 국가의 가치와 철학을 함축하는 것 같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하는 이 선서문도 헌법 제69조에 나와 있다. 마지막 제10장 헌법개정 전에 “경제”가 제9장에 규정되어 있다. 헌법기관의 구성과 조직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경제가 헌법의 한 장을 구성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지지만 경제가 국가의 모든 면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헌법에서 확인하게 된다.
때 맞춰 출간된 「일생에 한번은 헌법을 읽어라」(2024. 8.)의 저자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 서문에 국가도 헌법도 ‘또 다른 나’이며, 헌법을 통해 나와 국가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썼다. 좋은 헌법은 국가를 건강하게 하며, 개인의 발전의 근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헌법은 내 삶의 철학이 될 수 있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필사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게 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문학작품이나 성경을 필사하는 사례가 많다. 헌법 필사는 이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헌법을 알아야 이 나라의 제대로 된 주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헌법을 바르게 이해하고자 헌법 필사를 하는 것이리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이 잘 지켜지고 헌법대로만 한다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