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출간한 책에서 “수학은 수천년간 지식을 축적하며 발전해 온 유일한 학문이다”라는 말을 썼다. 어떤 분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SNS에 올렸는데, 이 책 내용이 아주 좋지만 흠이 한 가지 있다며 내가 쓴 이 말을 지적했다. 인문학과 철학의 역사를 너무 무시한 것 같다고 한다. ‘이 말’은 과연 좀 지나친 말일까?
내가 한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래된 학문들도 많은데 오직 수학만이 오래된 것처럼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느낀다. 실은 나는 약 30년간 수학사 강의를 해 오면서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이 말을 강조한다. 수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한 사람들 반응의 예를 들자면 “철학도 수천년간 발전해 왔다” “건축학, 천문학 등도 오래된 학문이 아니냐” “다른 학문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는 “수학은 수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에 발전한 것이지만 물리학은 그 이전부터 발전해 왔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듣는 이가 한 문장을 단어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듣는 것은 쉽지 않고 이 말을 그저 영역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럼 과연 수학만이 수천년간 지식을 축적하며 발전해 온 학문인가? 우선, 이 말은 수학이 ‘아주 오래전부터 발전해 왔다’가 핵심이 아니다. ‘지식을 탑을 쌓듯이 축적하며’ 발전해 왔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학문이 지식을 쌓으며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수천년 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발전해 온 학문은 흔하지 않다. 철학의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후대의 철학자가 더 낫다고 할 수 없고 데카르트, 칸트보다 현대의 철학자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지만 수학은 다르다. 철학은 지식을 쌓으며 발전하는 학문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부분의 인문학이나 법학도 이와 유사하다.
천문학과 수학은 한 몸이었다
그럼 자연계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의학, 천문학, 물리학, 건축학, 생물학, 공학 등은 어떠한가? 이 중 천문학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불과 수백년 전에 새로운 학문으로 탄생했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문으로 거듭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기하·산술·천문·음악의 4개 분야로 나누었고 그 이후 유럽에서는 이 넷을 수학의 근간으로 여겨 왔다. 즉 천문학은 오랫동안 수학과 한 몸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꼽히는 가우스(1777~1855)의 직업은 대학의 천문대장이었고 평생 천문학을 연구했다. 하지만 천문학조차도 지동설 이후에 그 이전의 이론을 다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결코 수학만이 위대하다거나 다른 학문은 수학만 못하다는 뜻으로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수학의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수천년 전에 발견된 피타고라스 정리가 아직도 진실이고 거의 모든 수학적 지식은 그다음의 지식을 얻는 데에 발판이 돼 왔다. 2000년 전의 수학, 1000년 전의 수학 수준이 어느 정도였고 수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 우리는 기록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또한 300년 전 오일러의 수학, 200년 전 가우스의 수학, 150년 전 리만의 수학, 100년 전 힐베르트와 푸앵카레의 수학을 이해해야 현대 수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학문 분야가 더 중요한지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역사가 더 길다고 해서 더 위대한 학문인 것도 아니다. 나는 수학적 지식은 위계가 분명해서 그 전의 지식이 있었기에 그다음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수학은 오랫동안 탑을 쌓듯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수학은 크고 높은 지식의 탑
수학이 쌓은 지식의 탑은 크고 높다. 그래서 수학적 지식이 과학기술에 적용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수학자들에게 “당신의 연구가 어디에 활용되나요?”와 같은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수학이 순수한 진리 탐구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거니와 수학은 일찍 출발해 저 앞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의 수학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오랫동안 수많은 천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도 이제는 새로운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