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유행한 후, 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서운함을 덜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절친한 친구는 내가 “속상해서 염색했어”라고 말하면 “응, 잘했네”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그럴 때면 친구가 우울한 일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궁금해하지도 않을까, 하다못해 염색이 잘됐는지라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의아했다. 친구가 늘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알아내어 적절한 위로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친하게 지내왔는데 왜 매번 나만 최선을 다하는지, 반대로 친구는 나를 다정히 대해주지 않는지가 불만이었다.
MBTI가 유명해진 후, 친구는 ENFP인 나와 하나도 겹치지 않는 ISTJ이고, ‘염색을 해서 기분이 나아졌다니 다행이다. 속상한 일 얘기를 하고 싶었으면 네가 어련히 알아서 그 얘기를 꺼냈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 열여섯 가지 성격으로 분류되는 검사에 맞추어 개개인의 다채로운 성격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위로의 방식만이 정답은 아님을 깨닫게 됐다. 친구는 왜 속상했냐고 질문을 던지면 혹시나 말하고 싶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를 억지로 꺼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굳이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더불어 자기에게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되살리도록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나름의 최선으로 나에게 묵묵히 애정을 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어떤 슬픔을 느꼈는지 묻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같이 대화하면서 대응할 방안을 함께 마련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숨기고 싶은 일들을 모르는 체해주면서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과 같이 기분이 나아질 만한 일을 찾아서 했다는 점을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모양의 다정이 오래도록 오가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게 의심할 필요 없는 꽉 찬 마음이었다니 괜스레 든든해진다.
김병운의 소설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창작과비평’ 2024년 겨울호)에는 한집에 살게 된 홍주와 ‘나’가 등장한다. 이들은 집에서는 가까이 지내지만, 학교에서는 서로를 모르는 체한다. 알리고 싶지 않은 사정을 본의 아니게 들킨 둘은 서로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의 비밀 또한 함구할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방식으로 의리를 지킨다. 홍주의 비밀은 동창생의 집 창고에 세 들어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이고, ‘나’의 비밀은 아빠가 청각장애인이면서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이다. 술에 취해 집기를 부수고 괴성을 지르며 아빠가 ‘나’를 학대할 때면, 엄마는 ‘나’를 홍주가 있는 광채로 피신시킨다. 그때마다 홍주는 ‘나’가 홀로 울 수 있도록 자기가 아끼는 ‘워크맨과 이어폰’ 그리고 이불을 내어주고는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스스로 진정이 될 때까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홍주는 ‘나’의 아픔을 기꺼이 모르는 체해준다. ‘나’ 역시 홍주와 학교에 갈 때면 서로 다른 집에 사는 듯 시차를 두고서 대문을 나선다.
나만 알고 싶은 나의 부끄러운 실수, 못나고 수치스러운 순간, 감추고 싶은 상처들을 혼자 충분히 서러워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자상함. 무리하게 다 알려고 들지 않으며 한발 멀어져주는 섬세함. 그와 같은 무심한 다정도 온도만 다를 뿐 슬픈 사연을 죄다 듣고 위로해주려는 집요한 애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팔 벌려 안길 품을 만들어주는 다정과 충분히 멀리 있음을 내보여 안도할 수 있도록 등 돌리는 다정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배웠다. 타인의 치부에 눈감아주는 일이 차갑게 외면해버리는 일과 다르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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