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만년필’만으론 돌아오지 않는 만년설

2024-10-16

얼마 전, 스위스의 알프스 정상 융프라우에 올랐다. 만년의 지구를 간직한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인 해발 4158m의 융프라우는 어느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도 환상적인 작품 사진이 됐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빙점 고도가 높아져 매년 1m씩 녹아내린다는 설명은 굳이 과거의 사진과 비교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었다.

1992년 브라질부터 일본 교토, 프랑스 파리, 영국에 이어 2023년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된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까지 많은 국가들이 탄소중립의 수많은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아무리 좋은 만년필로 서명해도 사라진 만년설과 빙하는 우리 생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추석이 지나서까지 내리쬔 폭염으로 이제 전 국민이 기후위기는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님을 실감했지만, 달력의 절기대로 심은 모종이 햇빛에 타 죽어 두세번이나 다시 심어야 하는 배추밭이나, 난데없이 쌀이 없어 한국에서 택배로 배달까지 하는 일본의 지금 상황은, 어쩌다 이변이 아니라 매년 일상처럼 겪어야 하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올해 기온이 그나마 가장 나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겠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누구도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는, 만년설과 빙하를 위해 더 서명해야 할 문서와 만년필보다 당장 더 다급한 걱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청년농과 귀농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중에는 누가 농사를 지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떨치기 어렵다. 이미 2020년 기준으로도 65세 이상 농가 비중이 전체의 56.4%를 차지했고, 승계가 예정된 40대 잠재 승계농가는 8.6%에 불과했으며, 전체 고령농가의 83.3%는 승계자가 아예 없는 실정이었다.

열정만으로 농업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경제성 있는 규모를 위해 상당한 시설과 자본이 필요한 지금은, 자본이 많지 않은 귀농농가나 청년농들이 83.3%를 메꾸기에는 상당한 역부족일 것이다. 그나마 상속과 사전 증여를 통해 가업 승계라도 해서 생산규모가 유지돼야 하는데 나름 규모화된 농장에서도 자녀들이 영농 승계를 하지 않는다는 고민도 현장에서 많이 듣는다.

제도와 정책은 이정표와 나침반이다. 제조업과 같은 일반기업은 가업 승계에 대한 과세 특례와 피상속인이 30년 이상 계속 경영한 경우 600억원까지 가업상속공제가 되는 반면, 작물재배업과 축산업을 영위하는 농업법인은 가업 승계에 대한 증여 과세 특례가 적용되지 않고 30년간 계속 경영한 경우라도 상속 재산 30억원까지만 인정이 된다. 유리온실농가의 자녀가 승계를 위해서는 온실 일부를 잘라내서 매각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우스갯말도 들린다.

편법 재산 상속으로 악용된다거나, 승계 후 계속 영농의 확인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당연히 확실하게 만들어야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승계가 가능한 젊은 농민이 유입될 수 있는 더 강력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2022년 통계청 자료를 참고해서 산출해보면 과채·화훼·특작·과실류 재배농가 중 자산규모가 30억원 이상인 농가는 1만2658농가로 추산되며, 관세가 거의 0%인 한돈의 경우 올 2월 기준 5834농가로 파악된다.

인구절벽이 닥쳐오니 애 낳으면 1억원씩 주자던 예전 개그 같던 말들이 현실 정책이 돼가고 있다. 농민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농산물이 가장 저렴한 것이 올해가 아닐지 진심 우려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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