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35) 이은봉 시인의 ‘열려 있는 귀’

2025-03-30

‘열려 있는 귀’

- 이은봉 시인

내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

저 스스로는 닫지 못한다

눈처럼 꼭 감지 못하는 귀

입처럼 꽉 다물지 못하는 귀

코처럼 뻥 뚫려 있는 귀

내 귀는 항상 열려 있다

아무 말이나 죄 듣는다

좀처럼 순해지지 않는 귀

낮말이나 밤말이나 다 듣는 귀

온갖 귓속말까지 듣는 귀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쪽 귀로 나가는 말들

쫑긋대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못 들은 체하며 살아야 한다

먼 하늘이나 들으며 살아야 한다.

<해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면서 살아갑니다. 차마 보기 끔찍해서 불 수 없으면 눈을 감거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 있지만 저절로 들려오는 소리는 듣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내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귀는 저 스스로 닫지 못하고 눈처럼 감지 못하며, 항상 코처럼 뻥 뚫려 있어서 “내 귀는 항상 열려 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우나 고우나 다 듣고 살아야 합니다. 좀처럼 순해지지 않는 귀여서 “낮말이나 밤말이나 다 듣는 귀”, 심지어 “귓속말까지” 듣고 살아야 합니다.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쪽 귀로 나가는 말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듣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쫑긋대지 않고”, “못 들은 체”하며 “먼 하늘이나 들으며 살아야 한다.”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먼 하늘의 소리”란 자연의 섭리인데, 늙어서 귀가 어두워지는 것도 일종의 섭리일 것입니다.

귀가 어둡지 않고도 흘려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특히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요.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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