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 칼럼] '전주 김 씨' 김정은의 민족 갈라치기

2025-04-15

우크라이나전 북한군 피해 커지자

"한국이 자폭드론 공격" 거짓 선전

'동족 아니다'며 대남 적대감 고취

통일·민족 지우기 비판 받아 마땅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김정은이 지난 4일 군 특수부대 훈련장을 찾았다. 마침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받아 안은 날이니 택일 하나는 기막혔다. 한미동맹과 대북압박에 방점을 두며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남조선 대통령'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했을 게 분명하다.

이날 김정은의 얼굴에서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총참모장 리영길과 국방상 노광철은 물론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제11군단장 리봉춘, 총참모부 전투훈련국장인 오광식 등도 덩달아 웃으며 분위기를 맞췄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방상이었는데 노광철에 밀려 이날 처음 국방성 제1부상(차관)으로 강등당한 명찰을 달고 나온 강순남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지키는 듯 했다. 좀체 집중하지 못하면서도 대장 계급 유지하고 있는 게 어디냐는 눈치였다.

지난해 10월 중순 1만1000여명의 폭풍군단 병력을 우크라이나전에 투입한 북한은 이 가운데 1000명이 죽고 3000명이 부상당하는 궤멸 수준의 손실을 입었다. 그것도 올 초 통계니 지금은 피해 규모가 훨씬 늘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얼마 전 3000명 수준의 추가 병력을 투입했다는 게 국가정보원과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측이 파악한 전황정보다.

이런 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김정은이 웃음을 보여서는 안된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나어린 병사들과 같은 또래의 동료들이 훈련받는 현장에선 더더욱 그래야 했다. 128만명의 정규군 병력이 있는데, 그깟 몇 천명이 대수냐 하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필자가 굳이 '파병'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건 김정은의 병력 파견이 용병 혹은 전쟁노동자 송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파병이라면 자기 국가나 체제를 상징하는 국기 등 깃발을 내세우고 부대마크나 군기를 앞세워야 한다. 자국의 군복을 입고 그 지휘관의 통제아래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해외에 파병된 우리 군이 지금 그러하고, 57만여 차례 작전을 전개한 61년 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도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의 병력 파견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 북러 모두 유엔헌장 51조까지 들먹이지만 이는 침략당한 국가를 지원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크름에 이어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를 돕는 건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몰래 군대를 보내고 세상이 다 알아버린 지금까지도 사실을 감추고 있는 건 이런 부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아무리 철저한 통제와 입막음을 한다해도 수 천명의 청년세대가 죽거나 다친 참극을 어물쩍 넘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머지않아 평양으로 돌아올 부상병들은 전역 후 각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부모형제들에게 조심스레 격전지 쿠르스크에서 그들이 목도한 비극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어떤 겁박이나 회유도 이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주를 이루는 북한군 병사들의 부모도 40대 안팎의 나이다. 과거 세대처럼 자식들을 잃고도 수령을 위한 헌신이나 노동당을 위한 희생으로 치부하고 체념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젊은 나이에 평생 치유되기 어려운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과 마주한 아들을 바라보며 김정은에 대한 반감을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심이반과 체제동요라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정은과 노동당의 지배세력은 우크라이나전 병력 파견과 관련한 기만과 세뇌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통보조차 하지 않았고 당사자인 병사들에게도 훈련을 위해 투입되는 것이라 속였다. 드론에 의한 희생이 늘어나자 한국군의 소행이라는 식으로 거짓 선전을 해 적대감을 부추겼다. 지난해 초 김정은이 직접 나서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남북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거나 통일‧민족이란 말을 지우라고 강요하던 걸 머나 먼 전장으로까지 확산시킨 것이다.

김정은이 참관한 특수부대 훈련장에는 '대한민국 족속들은 동족이 아니다'는 대형 선전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자비한 초토화나 영토완정 운운하는 구호도 내걸렸다. 북한 주민들, 특히 젊은 군인들에게 대남 적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이런 김정은에게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이라 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문구 하나를 6.15공동선언에 넣으려 얼마나 아글타글 했는지를 말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김일성의 통일 관련 정책노선 등을 담은 3대헌장기념탑을 하루아침에 폭파 형식으로 철거한 장본인이니 말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본관(本貫)이 전주 김 씨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 손자 김정은은 남북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을 정도로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했으니 집안 내력에 대한 공부가 미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제와 아닌보살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습 권력의 유지를 위해 청년군인들을 사지로 내몬 것도 모자라 2500만명 주민을 '대남 적대'로 가스라이팅하는 건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죄악이다. 김정은의 통일‧민족 지우기는 준열한 비판을 받는 게 마땅하다.

yjlee@newspim.com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