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조선소' 사활 건 조선3사…피할수 없는 전환, 잘되면 '수출'도

2025-11-06

지난달 20일 울산 HD현대미포 3도크. 이 회사가 건조 중인 5만 톤(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 갑판(덱·Deck) 위에 사람의 팔 모양을 한 로봇 여러 대가 설치됐다. 로봇은 갑판 위 레일을 미끄러지듯 오가며 불꽃을 뿜어내는 자동 용접을 시작했다. 덱 용접은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배관 같은 장애물들이 있어 로봇에게 맡기기 어려운 작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날 열린 '협동로봇 및 최신 자동용접 기법 시연회'에서 로봇은 능숙하게 용접을 해냈다. 이 회사 PC선 덱 블록 용접 자동화율은 58.6%에서 80% 수준으로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HD현대미포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협동로봇을 활용한 자동 용접 시스템을 옥외 작업장인 도크에서 성공한 것은 국내 최초"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가 스마트조선소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건조 공정에 로봇·AI를 도입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첨단 조선소 자체를 ‘플랫폼’화 해 수출하는 먹거리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스마트 조선소의 뇌 역할을 맡을 AI 플랫폼에는 엔비디아와 네이버도 뛰어들었다.

조선사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로봇’이다. 조선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실외 공정이 많아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아직까지는 주로 실내 공정에서 널따란 강재를 자르거나 대형 직선 철판을 용접하는 공정 등에 로봇을 활용 중이지만, HD현대미포처럼 로봇 활용 범위를 넓히고 정밀도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HD현대삼호는 자동화혁신센터를 운영하며 80여대 용접 로봇을 운용 및 학습시키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하반기 세계 최초로 곡선 부재로 이뤄진 대조립 곡(曲)블록(배 앞·뒤에 곡면으로 만들어진 블록) 제작 공정에 협동로봇을 적용했다. 그중 곡면 철판을 가공하는 일은 대부분 숙련공이 하는데, 이들을 따로 '곡가공사'라고 칭한다.

곡가공사는 설계도를 보고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의 속도와 열량으로 가열해 곡면으로 만들지 오랜 경험과 감각으로 판단한다. 이 감각을 데이터로 옮기는 게 과제다. 류철호 인하공전 조선기계공학과 교수는 “곡가공사의 데이터와 감각을 AI에 적용하는 학습이 필요한데, 경험을 정량화하는 데이터 축적은 조선소마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24일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조선용 로봇’ 개발에 나서 AI탑재 용접 로봇을 시작으로 이동형 양팔 로봇, 4족 로봇 등으로 협력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스타트업 ‘디든로보틱스’와는 거미 모양의 로봇 발끝에 영구자석을 탑재해 철제 선박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이동하며 용접하는 로봇을 실제 조선소에 접목할 방안을 연구 중이다.

스마트조선소 가속화

조선소 자체를 스마트조선소로 탈바꿈하려는 노력도 지속중이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을 ‘스마트야드’로 바꾸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1600억원을 투자한다. 스마트야드 역량은 미국에 있는 필리조선소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29일 업계 최초로 조선해양 설계 자동화 플랫폼 'S-EDP'를 공개했다. 2030년까지 설계·구매·생산 등 전 부문 데이터를 연결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HD현대는 디지털트윈으로 '눈에 보이는 조선소'를 2023년 구현했고, 내년까지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연결-예측 최적화된 조선소'를 구축한다. 2030년에는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로 생산성은 30% 높이고 공기는 30% 줄일 계획이다.

지난달 31일에는 네이버와 엔비디아가 손잡고 조선소 등 실제 산업현장에 쓰일 피지컬AI 플랫폼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아이작 심 등 3D 시뮬레이션·로보틱스 플랫폼과 네이버클라우드의 디지털트윈·로보틱스 기술을 결합해 조선 산업 환경을 가상 공간에서 재현하고, AI를 학습시키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피지컬AI 플랫폼을 구현하면 해당 조선소의 데이터를 넣어 딱 맞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HD현대의 데이터로 협력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진출 숙제 중 하나가 숙련공 부재인데, 스마트조선소는 숙련공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서 "다른 국가에 조선소 자체를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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