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웨이터 50년

스페인에서 건너온 일품 올리브에 프랑스산 유리잔에 스웨덴 장인이 제작한 커틀러리. 대한제국의 주방 창고에 있었다는 물건들입니다.
고종은 요즘 말로 팬트리 격인 주방 저장고를 각별히 관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지난 회에 소개해드렸듯, 양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였지요. 그럼 제일 먼저 보신 사진은 뭐냐고요? 위의 사진은 식기가 아닙니다. 황제의 변기, 요강이었다고 하네요.
고종의 식기 컬렉션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요, 기사 중간에 사진으로 모아서 보여드릴게요.

고종이 양식에 맛을 들이게 된 건 두려움 때문이었죠. 독살이 무서워서 주한 외교사절의 가족이 요리한 음식을 자물쇠까지 단단히 잠가 배달시켜 먹으면서였습니다. 그렇게 그를 양식의 세계로 인도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 여사가 한반도를 떠난 뒤에도, 고종은 양식의 맛을 잊지 못합니다. 아는 맛이 더 무섭잖아요. 고종이 양식을 먹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 한국 최초의 웨이터 이중일씨가 중앙일보에 남겨놓은 기록 보석함에서 꺼내서 전해드립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과 사료를 참고했습니다. 보완해 추가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기사 끝에 적시했습니다. 그 옛날, 무성영화 변사의 목소리처럼 AI로 생성한 오디오로도 기사를 들으실 수도 있어요. 기사 중간에 있는 오디오 버튼을 살짝 눌러 주세요. 이중일씨의 이야기는 매주 월요일 찾아옵니다.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⑤ “스페인 올리브를 구해 오라” 고종의 특명
중앙일보 1971년 3월 4일

서양 요리에 맛을 들인 고종은 궁중의 양식을 맡을 식부관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국 유학생 윤기익을 앉혔다. 윤기익은 런던대학의 광산과 출신이었으나 엉뚱하게 궁중의 양식 도입에 공헌하게 됐다. 고종은 그로 하여금 서양 요리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일류 쿠크(cook·셰프)를 초빙하게 했고, 집기 일습을 사들이게 했다.
궁중의 안순환도 양식 집기 도입에 큰 몫을 담당했다. 안순환은 대한제국의 궁중 잔치음식을 맡았던 전선사(典膳司)의 책임자였으며,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待令熟手, 궁중의 남자 요리사) 중 한 명이다. 이들은 해외 공관장들을 통해 집기와 쿡북(요리책)을 사들였는데, 매끈매끈한 포크와 나이프는 스웨덴과 스위스에서, 도자기류는 벨기에에서, 글라스(잔)는 얇고 단단하고 투명한 프랑스제를 조달했다. 모든 그릇엔 대한제국의 상징인 배꽃(이화) 마크를 새겨 권위를 높였다. 아래 사진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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