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독방·30년대 경성·미래의 토론토…VR로 경험하는 공간

2024-10-27

국립현대미술관 '순간이동'전…김진아 감독 '미군 위안부' 3부작 등 소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식물이 가득한 미래의 캐나다 토론토, 1930년대 경성, 전라북도 군산의 미 공군 기지 인근 기지촌, 1.6평 교도소 독방.

실제 경험할 수 없거나 경험하기 힘든 공간의 이야기를 가상현실(VR) 속에 담은 작품들을 모은 '순간이동' 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진아의 '동두천'을 관람하기 위해 회전의자에 앉아 VR 헤드셋과 헤드폰을 착용한 관객은 어느새 동두천 미군 부대 주변 유흥가에 서 있다.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 속에서는 어디선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려온다.

관객은 소리를 따라 빙글빙글 회전의자 위의 몸을 돌리며 거리를 살피게 된다.

화면은 어느 허름한 여인숙으로 바뀌고 누런 장판 위 구겨진 이불에서는 어느새 피 같은 검은 액체가 흘러나온다.

1992년 발생한 미군 범죄인 '윤금이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2017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VR경쟁부문에서 '최고 VR 스토리상'을 받는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전시에서는 '동두천'과 함께 최근 철거를 둘러싸고 사회 문제가 된 동두천 성병관리소 '몽키하우스'를 다룬 '소요산', 군산 미 공군기지 기지촌 '아메리칸 타운'을 다룬 작품까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권하윤의 '구보, 경성 방랑'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100년 전 구보씨를 따라 경성의 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관객은 흑백 VR 화면을 따라 전차를 타고 이동하고 옛 서울역사와 경성의 카페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소장품 기획전에서도 매주 금요일 체험할 수 있다.

김경묵의 '5.25㎡'는 제목 그대로 5.25㎡, 약 1.6평 크기의 교도소 독방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가 도입되기 이전인 2015년 병역거부로 1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작가의 독방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실제 독방 크기의 전시 공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간 관람객이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독방의 모습이 재현된다.

벽에는 수감자의 권리가 적힌 안내문과 달력이 걸려 있고, 한쪽 구석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다.

편지글을 읽는 형식의 내레이션을 통해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2024∼2025년 한국과 캐나다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과 캐나다국립영상위원회가 공동 기획했으며 캐나다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작가 겸 영화감독인 랜달 오키타의 '거리의 책'은 마치 일본식 다다미방처럼 꾸며진 공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경험하는 작품이다.

1935년 일본을 떠나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일본계 캐나다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했던 작가의 조부 이야기를 담았다.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헤드셋 속 장면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VR 속 물건들을 이동시키는 등 이야기의 진행에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이다.

리사 잭슨의 '비다반: 첫 번째 불빛' 속에서는 캐나다 토론토 시청 앞 네이선필립스 광장과 지하철역이 식물과 물로 채워진 모습 등 자연이 도시에 스며든 미래의 토론토를 상상한 풍경이 VR 헤드셋 속에 펼쳐진다.

이밖에 지금은 사라진 서울 종로의 극장 단성사 내부에 들어가 VR 속 영화를 관람하는 유태경의 '시네마틱 스크리닝: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 등 모두 11점을 관람할 수 있다.

VR 작품은 현장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zitron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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