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책 기조가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주 69시간제 개편’ ‘화물연대 탄압’ ‘건폭몰이’로 상징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반노동’ 기조를 유지했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권 보장’ ‘노동시간 단축’ 등 반대 기조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노동 환경과 안전한 일터’ 조성을 강조하며 자영업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을 포괄하는 ‘일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을 약속했고 ‘공짜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된 포괄임금제 금지, 주 4.5일제 도입 등 노동시간 단축제도를 공약했다.
노동계는 ‘소년공’ 출신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이 대통령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국정의 중요 가치로 내세우며 취임사에서 “기업 발전과 노동 존중은 양립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국회 청소노동자와 방호직원을 찾아 격려한 점도 ‘노동 존중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 정부 ‘노동 1번 정책’ ‘노란봉투법’ 되나 — 12일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는 첫 노동 정책으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국회를 두 차례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입법이 무산됐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도 “(노란봉투법은) 대법원 판례, 국제노동기구에서도 다 인정하는 거라 당연히 해야 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22대 국회에서 좀더 강화된 내용으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새로운미래 등 6개 정당이 공동으로 발의한 안에는 노조법상 노동자 범위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더하고, ‘노조를 노조로 보지 않는’ 요건에서 ‘노동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반대했던 법안들은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뒤 처리 시점을 고민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이 협치와 민생 우선 기조를 강조한 영향이다.
SPC, 태안화력발전소 산재 사망 대응
‘새 정부 실행 의지 가늠하는 시험대’
지난달 19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상반신이 기계에 끼여 숨진데 이어 지난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김충현씨(50)가 선반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사망한 것도 새 정부에 닥친 현안이다. 2022년 평택 SPL제빵공장, 2023년 8월 성남 샤니공장에 이어 SPC그룹에서 발생한 ‘끼임’ 사망 사고는 이번이 3번째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계기가 된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사고가 일어난 곳이다.
노동계는 대형 산재 사망 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또 일어난 것은 산재 사고가 일어나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아서라고 비판한다. 시화공장 사고는 12시간 주야 맞교대가 반복돼 집중력 저하 등 위험이 있는 ‘2조 2교대’ 시스템, 생산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기계에 문제가 있어도 멈출 수 없는 현장 분위기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도 김용균씨 사망 이후 다단계 하청구조, 1인 근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김충현씨는 위험을 외주화한 구조가 바뀌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이 대통령은 김씨 사망 이후 페이스북에 “일하다 죽는 나라,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썼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대통령실 앞까지 나와 받는 등 지난 정부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약으로 산재사고 사망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노동안전보건청을 설립하고 기업 안전보건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구체적 실행 방안을 내놓았다.

두 사망 사고에 새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정부의 실행 의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10일부터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15곳과 협력업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전반에 대한 기획 감독을 벌이고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한전KPS,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특별감독에 준하는 감독을 시행하기로 했다. 한편 SPC 사망 사고 관련 수사는 더딘 상황이다. 경찰·노동부·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세 차례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할 때 놓쳤던 2인 1조 근무 의무화 등 구체적인 실행 조치들을 강화해야 한다”며 “오비이락처럼 정권 출범 이후 큰 산재 사망 사고가 터졌는데 ‘위험의 외주화’ ‘죽지 않고 일할 권리’에 대해서는 국민주권 정부라는 소명으로 제도 개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연장 논의 본격화, 사회적 대화 틀은?
근로자 추정제, 최소보수제 도입 검토
올해 정년연장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법적 정년연장을 65세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민주당 의지처럼 법적 정년연장을 할 수 있을지, 경영계가 내세우는 퇴직 후 재고용 논의가 어느 선까지 받아들여질지도 지켜봐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선 대기업·공공기관 노동자들 중심으로 정년연장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우려, ‘쉬었음’ 청년의 통계 수치를 계속 경신하는 상황에서 청년 고용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차방정식의 답을 함께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년연장 논의는 노사정 대화의 틀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엿볼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경사노위 트랙에서 논의를 할지, 이미 구성돼 있는 민주당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논의를 할지, 새로운 TF를 만들지 열려있는 상황이다. 기본사회위원회에서 논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기본사회위가 생애 소득 보장과 의료·돌봄·주거·교육 등 분야별 기본 서비스를 논의하는 총괄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그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은 오는 24일 중앙위원회에서 ‘국회판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하는 논의를 한다. 1999년 사회적 대화에서 탈퇴한 민주노총이 26년 만에 대화에 나설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조합원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회적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 85.6%였다.
비임금 노동자가 860만명을 넘어섰다.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위한 ‘근로자 추정제’와 ‘최소보수제’ 도입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에는 노동자가 스스로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했지만 근로자 추정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사용자 측이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최소보수제는 근로자 추정제에서도 근로자로 분류가 어렵거나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노동자에 대해 최저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게 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자는 제도다.
이는 최저임금 적용 확대 논의의 장애물이었던 ‘근로자성’ 판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평가된다. 양대노총은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 등 도급제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지난 10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정부·국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최저임금 적용 확대 방안을 논의해달라고 키를 돌린 상황이어서 정부와 국회에서 본격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