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현지시간) 개막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5’ 전시장에 편의점이 차려졌다. 편의점 음료 냉장고 뒤편으로 각종 음료가 가득 채워진 창고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을 오가는 것은 선반 높이의 원형 기둥에 팔이 달린 로봇. 팔을 뻗어 음료를 잡더니 매장 냉장고 뒤에 채워넣었다. 일본 2대 통신사 KDDI가 선보인 인공지능(AI) 재고충전 시스템이다. 전시 스태프 토미야스 나나코는 “로봇이 물건을 옮겨 노동력을 아낄 수 있고, 물건을 채우려 자리를 비웠을 때 생기는 안전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며 “현재 300개 매장에 배치된 이 로봇을 일본 전체 편의점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편의점 옆으로는 자율주행차 한 대가 주차됐다. 진부한 전시 아이템이 될 뻔한 이 차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차량 뒷편에 진열된 감자칩과 삼각김밥, 음료수이다. 이른바 ‘문 앞의 편의점’, 식료품점이 드문 지방이나 고령자 커뮤니티에 AI 기반으로 무인 차량이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이다.
일본에서 편의점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사회 인프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소멸과 고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통신사의 AI 사업이 사회적 솔루션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사례다.

■AI ‘유스 케이스’ 찾는 통신사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전시관이 자리잡은 3·4홀에는 텔레포니카, T모바일, 오렌지 등 글로벌 통신사들도 대형 전시관을 차리고 다양한 AI 기술·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내용은 저마다 AI 모델로부터 시작해 AI 기반 네트워크 효율화, 보안 솔루션, 통화·업무 에이전트(비서)까지 대동소이했다. AI를 사업에 접목하긴 했는데,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을 구체화하는 단계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KDDI처럼 각 나라 상황에 맞춘 흥미로운 ‘유스 케이스’들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일본 통신사인 NTT도코모는 전시장 전면에 성층권 비행체(HAPS·High Altitude Platform Station), 저궤도 위성(LEO), 정지궤도 위성(GEO)를 결합한 통신네트워크를 소개했다. 이번에 KT도 6G 핵심 기술로 소개한 것이다. NTT도코모는 HAPS가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재난 상황시 통신망 복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용을 구체화한 점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 최대 통신사 비엣텔 전시장에선 상품 분류대 위를 로봇이 부지런히 오갔다. 로봇이 소포를 지역별 배송 가방으로 보내주는 자율 상품 분류 로봇(AGV)이다. 제조업 허브로 떠오른 베트남의 물류 인프라를 혁신하는 동시에 최근 베트남의 온라인 쇼핑 붐에 올라타 수익을 내려는 시도라고 한다.
오렌지는 오픈AI·메타와 협력해 아프리카 지역 언어를 LLM 모델에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였고, 보다폰은 수면에 IoT(사물인터넷)로 연결된 부이를 띄워 수질 관리를 하는 ‘하이드로 센스’ 솔루션을 소개했다. 디지털 포용성, 친환경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도다.
■스마트폰 중국 존재감 두드러져
올해 MWC에선 물량 공세에 나선 중국 제조 업체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소비자 기기와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솔루션, 네트워크 장비를 망라한 화웨이와 더불어 전기차 SU7 울트라와 ‘괴물 카메라폰’을 공개한 샤오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실물로 접한 샤오미 15 울트라는 ‘카툭튀’의 존재감이 컸지만, 초슬림 디지털카메라로 생각한다면 썩 나쁘지 않은 인상이었다. 카메라를 구동하니 줌이 120배까지 늘어나는데서 첫 번째 놀랐고, 맞은 편 부스 천장등이 선명하게 찍힌 데서 두 번째 놀랐다. 한국어로 말했음에도 목소리 인식 정확도가 높아 AI 기능도 준수해 보였다. 자신을 마이크라고 소개한 샤오미 스태프는 삼성전자·애플과 비교하는 질문에 “카메라 기능은 매우 훌륭하고, 다른 기능도 삼성이나 애플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스마트폰에 포토그래피 키트라는 액세서리를 부착하자 영락없는 필름 카메라의 모습이었다. 프리미엄 시장 도전자로서 관심도가 높은 기능에 집중해 고객에게 소구하려는 전략으로도 읽혔다.

세계 최초의 두 번 접히는 스마트폰으로 화제를 모은 화웨이의 트리폴드폰 MATE XT는 펼쳤을 때 화면이 크면서도(10.2인치) 두께는 얇아(3.6㎜) 인상적이었다. 다 접었을 때도 일반 스마트폰에 지갑형 케이스를 씌운 두께(12.8㎜) 정도였다. 밝은 조명을 감안해도 화면의 주름은 어느 정도 눈에 띄었다. 제품을 살펴보던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 직원은 “확실히 얇긴 하다”면서도 “내구성이 얼마나 좋을 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전날 AI에 5년 간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아너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매직7 시리즈를 중심으로 하는 모바일 생태계를 공개했고, ZTE는 게이밍 스마트폰 누비아 네오3 시리즈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레노보는 바깥 쪽으로 화면이 접히는 컨셉형 AI PC와 탈착식으로 3개 화면을 접고 펼칠 수 있는 노트북도 선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