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은 참 반듯한 배우다. 뭐 하나 허투루 답변하지 않는 진지한 인터뷰 태도도 그렇고, 연기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그가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을 알리는 홍보맨으로 나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역시나 했다. 그는 빠듯한 일정을 쪼개 작지만 소중한 극장들을 유튜브 ‘제훈씨네’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영화관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화두와 함께다. 그에게 극장은 “인생을 배운 소중한 곳”이다. 다른 관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한 극장 문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 이유다.
영화 다양성 지키는 배우들
아이돌은 독서 붐에 큰 기여
유명인 ‘선한 영향력’ 커져야
이제훈이 극장이란 플랫폼 지키기에 나섰다면, 배우 소지섭은 스크린을 채울, 좋은 콘텐트(영화) 소개하기에 진심이다. 그는 10년 넘게 영화사 찬란과 함께 해외 예술영화 수입 배급 및 투자를 하고 있다. 감동과 여운을 주는 영화다 싶으면 어김없이 크레딧에 소지섭의 이름이 있다. ‘비거 스플래쉬’ ‘플랜75’ ‘유전’ ‘더 스퀘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미드소마’ ‘악마와의 토크쇼’ 등 수작을 고르는 그의 안목에 감사하는 영화 팬들이 많다.
예술영화 투자·수입업은 기본적으로 적자 사업이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하는 건, “힘들고 손실이 크지만, 배우로서 받은 것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소지섭이 올해 수입한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건 ‘존 오브 인터레스트’다.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담장 밖에 사는 독일군 수용소장 가족의 안온한 일상 속에 스며드는 소음과 비명, 냄새는 처참한 학살 장면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두 배우가 영화 산업의 다양성과 가치를 지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10여년 간 독립영화를 후원하고 있는 배우 유지태는 통일부 북한인권 홍보대사를 맡아 국내외에서 북한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우 차인표도 북한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데, 3년 전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은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한국학 필독 도서로 선정됐다. 꾸준히 환경운동을 하는 배우 박진희는 1인 시위 등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아이돌의 책 읽는 모습은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독서 붐에 큰 기여를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불붙은 ‘텍스트 힙’(text hip, 책 읽는 것이 멋지다는 뜻)은 유명 아이돌들에 의해 그 전부터 싹텄다. 지난 5월, 아이브 멤버 장원영이 유튜브 방송에서 “사람들은 마흔에 읽지만 나는 스무 살에 읽고 싶었다”고 말한 이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판매량이 급증한 게 좋은 예다.
르세라핌 허윤진은 출국 길에 자주 책을 들고 나와 ‘공항 패션’이 아닌, ‘공항 책’으로 주목받는다. 예술인문서적 『요절』과 외국 에세이 『불안의 서』는 각각 방탄소년단 알엠(RM)과 배우 한소희가 언급한 뒤 재출간되기도 했다. 특히 알엠은 해외 투어 때 읽는 책을 팬과 공유할 뿐 아니라, 미술 전시나 반가사유상 같은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문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적 록밴드 U2의 보컬 보노는 빈곤국 구호에 앞장서며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자주 거론된다. 빈곤·질병·전쟁 등 인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음악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는 최근 발간한 자서전 『서렌더(SURRENDER)』에서 자신의 명성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화폐’로 정의했다. “내 명성을 줄 서 있는 레스토랑에서 먼저 자리를 안내받는 것보다 더 유용한 곳에 쓰고 싶은 열망이 늘 있었죠. 내가 가진 ‘화폐’를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고 싶습니다.”
보노는 그 ‘화폐’를 의미 있게 쓰기 위해 수십 년 간 폭력·빈곤·인종차별에 맞서는 노래를 만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도 나서고 있다. 유명인의 지위는 결코 자신이 잘나서 얻은 ‘벼슬’이 아니다. 대중의 사랑으로 얻은 선물 같은 것이기에 반드시 보답해야 할 ‘빚’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게 바로 ‘선한 영향력’이다. 대중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이 꼭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팬들에게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을 외치는 가수 임영웅은 콘서트를 찾는 어르신 관객들에게 늘 “건강 검진 받으시라”고 독려하는데, 이 한마디의 효과는 상당하다. 덕분에 암을 조기 발견한 팬의 사례도 있고, 수많은 자식이 부모에게 건강 검진을 닦달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만 있다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