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과 적당

2025-04-28

고성기, 시인

나이 들어가면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말들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그리 싫어하던 말인데 이제는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말에 ‘대충’과 ‘적당’이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대충’은 ①완전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쓸만한 정도. 또는 ②어림으로 적당히 헤아려서라는 말이다.

전에는 ①의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②의 뜻으로 쓰는 게 편하다.

‘적당’의 뜻은 ①어떤 조건이나 이치 따위에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게. ②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게. 이 말도 ②의 뜻으로 많이 쓰게 된다.

젊은 시절에 대충하고 적당히 하는 사람이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두리뭉실하게 그때만 넘기려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리뭉실하고 애매모호한 말이 더 정감이 가고 각박하지 않아 편할 때가 많아졌다. 이 말들은 오차 범위가 넓어 마음 편하고 여유가 있어 좋다

내가 시를 쓰다 보니 시에 사용하는 어휘는 다의성과 중의성이 많아 ‘적당과 대충’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다의성과 중의성은 문학작품의 폭을 넓게 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법률 용어는 그 해석이 분명해야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하면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가령 큰 계약서의 어휘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나이 들면서 규격이나 격식에 얽매이는 게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큰 문제가 발생하는 사항이 아니라면 대충하고 적당히 넘기는 것이 생활의 지혜일 수도 있다. 가끔은 나의 지난 세월이 왜 그리 각박했는지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

‘그 여인은 장미’라 노래한다면 적당히 해석할 일이다.

향기롭겠다. 아름답겠다. 가시가 있어 접근이 어렵겠구나 등 어느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대충과 적당’이 받아들여진다면 관용과 여유가 싹트는 사회가 아닐는지….

부엌에서 “곰국 끓였으니 소금 적당히 넣고 먹으라.”는 아내의 말이 외려 지혜롭다. 소금 한 스푼 넣고 먹으라 했으면 짤 수도 있고, 싱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추 묘종을 대충 심어도 되는 나의 텃밭이 고마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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