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박현주 스승이었다…150% 찍은 ‘백 할머니’ 투자법

2025-07-20

‘뉴스 페어링’ 팟캐스트

1972년 8월 2일 밤 11시40분. 태완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때아닌 심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태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공포문을 읽어 나갔다.

수첩에 발표를 받아 적던 기자들의 손이 충격으로 일순간 멈칫했다.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15호, 이른바 ‘사채 동결 조치’ 선포였다. 사채 시장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이 지고 있던 연 40%에 달하는 이자를 깎아주고, 상환일도 미뤄주는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사채 이자에 허덕이던 기업엔 구세주 같은 조처였고, 기업에 자금을 대던 사채업자에겐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었다.

기업은 앞다퉈 사채를 신고했고, 닷새 동안 신고된 사채만 3456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빌린 사람은 있는데 빌려준 사람은 누군지 모를, 주인 없는 돈 73억원이 신고된 것이다. 끝끝내 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경제계에선 이런 소문이 돌았다.

단사천이 누군데?

단사천을 몰라? 기업에 돈을 하도 많이 빌려줘서 이병철이랑 정주영도 단사천 전화는 벌떡 일어나서 받는다지?

명동 사채시장의 ‘현금왕’ 단사천 해성그룹 창업주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였다. 당시 사채시장에서 그가 융통했던 자금의 규모는 약 3000억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단사천이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몇 개는 고꾸라진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대한민국 경제의 양지에서 돈을 굴리는 재벌 그룹이 있었다면, 음지에서 지하 경제를 움직이는 ‘재벌 뒤의 재벌’이 있었다.

『재벌 뒤의 재벌』(영림카디널) 저자인 강병욱 경영학 박사는 “시대에 따라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봐야 경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려면 막후에서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거래소가 여의도가 아닌 명동에 있던 시절,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시세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백 할머니’ 백희엽은 어떻게 증권가의 대모가 될 수 있었을까.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의 주범 장영자는 어떤 수법으로 그 많은 사람을 속였을까. ‘말죽거리’ 양재동의 땅값이 1평(3.3㎡)당 200~300원이던 때 강남땅 100만 평을 사들인 사람의 정체는 누구인지도 들어봤다.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명동 사채 시장의 ‘현금왕’ 단사천

📌 연 수익률 150%, ‘백 할머니’의 투자 원칙

📌 숙명여대 ‘메이퀸’ 장영자의 몰락

📌 ‘그 사람’ 땅 안 밟곤 강남 못 지나갔다

📌 ‘MZ세대 조폭’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진행 : 박건 기자

🎤답변 : 강병욱 경영학 박사

알려지지 않은 부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를 잘 알려면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시대별로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분석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부자들에게 주목하게 됐다. 1960년대엔 기업가들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싶어도 금융기관이 충분한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 그때 기업 사채 시장이 발달했고, 그 시장을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1970년대엔 강남 개발이 이뤄졌는데 땅값이 뛰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1980~90년대엔 주식시장이 급성장했는데 그 시장의 동력이 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최근에 등장한 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1960년대 기업 사채시장에 ‘현금왕’이라고 불렸던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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