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 주저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흐느끼는 두 남자가 있다. 막 혈투를 끝낸 빅터와, 그의 친구 앙리의 모습을 한 괴물이다. 살짝 벌어진 빅터의 입술이 달싹이자, 참았던 울음이 새어나온다. 그런 그를 반쯤 감은 눈으로 바라보는 괴물은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빅터의 뺨 위에 닿은 괴물의 손끝이, 가느다란 호흡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가 속삭이듯 말한다. “혼자가 된다는 슬픔. 빅터, 이해… 하겠어? 이게… 나의….”
영화 ‘프랑켄슈타인: 더 뮤지컬 라이브’(이하 ‘프랑켄슈타인’) 속 한 장면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죽지 않는 군인을 만들고 싶었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실험으로 태어난 괴물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한국 창작 뮤지컬 실황 영화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ㆍ제공하고 위즈온센 박재석 감독이 연출했다. 규현(빅터ㆍ자크 역)과 박은석(앙리ㆍ괴물 역)이 함께 무대에 오른 지난해 8월 23일 촬영됐다. 18일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9일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공개된 영화는, 공연장의 긴장감을 더 가까이,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 듯 보였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장한 분위기의 서곡이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돌비 래버러토리스가 개발한 객체 기반 3D 서라운드 음향 기술)를 통해 영화관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첫 시퀀스부터 현장감이 상당했다. 배우들의 숨소리, 넘버가 끝날 때마다 환호하는 관객의 박수 소리도 몰입감을 더한다.

실연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은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시사 후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김지원 EMK 부대표는 “무대와의 거리가 멀어서 보이지 않거나, 관객 기준 옆모습이나 뒷모습만으로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도 자세히 클로즈업됐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최후의 일전을 벌인 후 마주 보는 빅터와 괴물의 얼굴 샷을 교차해 보여주거나, 싸움 후 쓰러진 괴물이 누운 채로 노래하는 얼굴을 가까이 비추는 식이다.
앙리 역의 박은석 배우는 “무대에선 관객에게 등만 보인 채, 혹은 옆모습만으로 연기해야 할 때도 잦다”며 “예를 들어 관객석을 등진 채 무대 뒤로 걸어가며 앙리를 노려보는 장면에서 내 표정은 앙리밖에 보지 못하는데, 카메라가 그때의 내 얼굴도 잡아줘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함께 무대에 서기 힘든 두 주연 배우의 호흡도 볼만하다. 박은석은 “뮤지컬은 대부분 한 역할에 두 명 이상이 캐스팅되기 때문에 같은 배역의 조합이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촬영 당시는) 규현 배우와는 하필 한 달 만에 만난 공연이었다”며 “합이 안 맞을까 걱정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멋있는 공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빅터 역의 규현 배우는 “괴물과 대치 씬에서 괴물이 대사하면 그다음 내가 연기를 해야 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괴물이 (내 연기를 끌어내느라) 대사를 안 해서 속으로 당황한 순간이 있다”며 “연습실에서도, 어떤 공연에서도 없었던 상황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제작진은 꼬박 1년여를 투자했다. 촬영 당시엔 총 13대의 고화질 카메라가 동원됐다. 박재석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촬영 한 달 전부터 씬 구성을 시작했다”며 “중요도에 따라 각 카메라가 언제, 무엇을 찍을지에 대한 분배도 미리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편집하다 보면 어떨 때는 앙리, 어떨 땐 빅터의 시선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원종원 평론가는 “실황 영화는 연출가 의도에 따라 스토리를 임의로 보여주는 형식적 특성을 갖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영화도, 공연도 아닌 새로운 장르의 무언가가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설 수 있는 공연 실황 영화가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앞당길까. 김지원 부대표는 “최근 K-콘텐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 이제는 K-뮤지컬 시대가 올 것”이라며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 뮤지컬 위상과 멋짐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원작 라이선스 문제 등이 해결돼야 이런 시도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