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밀실 스릴러’ 장르라는 점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 시나리오와 연출의 재능이 크게 빛을 발하고, 나름대로 밀도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제목: 살인자 리포트(Murderer Report)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7분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조영준
출연: 조여정, 정성일, 김태한
개봉: 2025년 9월 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한정된 공간’을 주 무대로 선택하는 영화의 특색이 있다.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만큼 등장인물의 수도 소수인 경우가 많다. 또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로 관객들을 압도해야 한다. 연극무대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상상력의 범위가 무한대라 할 수 있는 영화 작업에서 굳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상업적 측면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기본적인 묘책임은 분명하다. 실제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한 상업 영화의 대표작들을 훑어보면 이 같은 결과로 전설이 된 작품이 다수다.
20세기 영화 중 대표작으로 떠오르는 작품은 빈센조 나탈리가 연출한 캐나다 영화 <큐브>(1997)다. 정체불명의 상자 안에서 정신을 차린 일군의 사람들은 다른 상자로 이어지는 문 중 하나를 선택해 이동하며 출구를 찾는다. 달랑 하나의 세트에서 조명 색만 바꿔가며 무한대의 공간을 표현한 기막힌 제작 비화는 많은 창작자에게 본보기가 됐다.
열린 공간을 배경으로 해도 주인공의 행동반경에 제한을 둬 같은 효과를 꾀하는 작품도 ‘밀실 스릴러’의 범주에 든다. <폰부스>(2003), <디센트>(2005), <127시간>(2010), <폴: 600미터>(2022)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영민함으로 승부하는 밀실 스릴러 장르
건물, 자동차, 관 속, 동굴, 상어가 출몰하는 바닷속, 우주 공간처럼 각양각색의 장소와 상황들로 변주되고 있지만 이런 작품들이 폭넓게 수용하는 대전제는 결국 ‘고립’이라 할 수 있다. 홀로 고립되고 단절된 상황에서 위험에 빠진 인물이 명석한 사고와 순발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창작자의 ‘영리함’, ‘재기발랄함’ 등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시작부터 유리하다.
자신이 연쇄 살인자라 주장하는 인물(정성일 분)에게 은밀한 인터뷰 요청을 받은 기자 백선주(조여정 분). 호텔 스위트룸에서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점차 뜻밖의 진실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밀실 스릴러’ 장르라는 점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의외로 나름대로 밀도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비밀과 관계가 어느 정도 베일을 벗는 중반까지 내달리는 속도와 몰입감은 이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란 어떤 것인지 실감 나게 한다. 오랜 고심이 자명했을 시나리오와 연출의 재능이 크게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반면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문제가 봉합되는 결말까지의 과정에 이르러서는 다소 추진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느낌이 있어 크게 아쉽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선전한 작품이라는 결론이다.
야심 찬 기획과 열정적 연기의 조우
조영준 감독은 다수의 단편을 통해 주목받은 후 2017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머니(고두심 분)와 서른 살 난 발달장애인 아들 인규(김성균 분)의 이별 과정을 담은 멜로영화 <채비>를 통해 장편 데뷔를 했다.
올해 6월, 두 번째 연출작인 <태양의 노래>를 개봉했는데 유명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 역시 특이 질환을 갖고 있는 가수 지망생 소녀 미솔(정지소 분)의 성장 이야기였다.
8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시장의 침체가 극심한 올해에만 2편의 영화를 공개하고 있다는 점은 감독 개인의 감회를 떠나 산업적으로도 큰 특이점으로 포착된다.
앞선 작품들과 비교하면 <살인자 리포트>는 상당히 결이 다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한된 무대와 등장인물로 이끌어가는 작품인 만큼 치밀한 각본·연출과 더불어 두 주연배우 조여정, 정성일의 재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배우 다 나름대로 평균 이상의 연기력과 개성 있는 외모를 인정받고 있지만, 관객 동원력에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배우라는 공통점도 흥미롭다.

어느 분야나 동명이인은 많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연상을 통해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확률이 크다는 것은 장점일 것이다.
정성일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1990년대를 관통해 영화를 좋아하고 관련한 서적이나 비평을 두루 접한 관객들이라면 영화잡지 편집장이자, 평론가, 영화감독으로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을 바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주말 TV 영화가 사랑받던 시절 KBS <명화극장>의 소개를 맡았던 정영일(1928~1988) 평론가를 먼저 기억할 것이다.
시대를 이어 비슷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비슷한 이름의 두 사람은 그만큼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필자에게 정성일이란 이름의 배우의 존재가 인식된 것도 그의 외모나 연기보다 이름이 먼저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명 평론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배우라는 것 자체가 강렬했고, 그로 인해 조연급 출연 때부터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연기를 눈여겨보게 됐다.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얼굴과 외모다. 단순히 동안이라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개성 있고 강렬한 인상만큼 맡은 배역과 차려입은 의상에 따라 소화해내는 나이대의 폭이 꽤 넓다.
1980년생이니 올해 45세다. 데뷔작이 2002년 영화 <에이치>라고 하니 벌써 23년 차 중견 배우다. 연극과 뮤지컬을 주 무대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었지만, 오랜 무명시절을 보냈다.
2022년 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더 글로리>를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즈음까지도 생계를 위해 택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고백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