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사망, 안방극장 ‘죽음’을 생각하다

2025-09-09

안방극장의 드라마들이 죽음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거나 감정을 과다하게 끌어모으는 수단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소재로 삶을 생각하는 철학적인 주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록 소재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그 시청률 쪽의 성취는 의견이 갈리지만, 드라마의 소재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MBC에서는 현재 금토극으로 박준우 연출, 이수아 극본의 ‘메리 킬즈 피플’을 방송 중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방송된 캐나다의 원작 드라마를 기반으로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의 조력 사망을 돕는 의사와 이들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극 중 배우 이보영이 연기하는 최명빈은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베테랑 응급의학과 의사이지만 과거 희소병에 걸린 어머니의 자살을 도왔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정해진 결말 앞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고 고민을 키우던 그는 결국 젊은 말기 암 환자의 어머니가 딸을 살해하는 사건을 맞닥뜨리고 ‘조력사망’을 제공하는 의사로 변모한다.

의료인이 치료할 수 없는 환자의 요청을 받아 약물 등으로 환자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조력사망’은 대한민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2018년부터 합법이 된 연명치료의 중단 등 소극적 의미의 조력사망은 허용되고 있다. 조력사망은 ‘메리 킬즈 피플’의 사례처럼 직접 의료인이 약물 등으로 죽음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연명치료를 스스로 중단하는 ‘존엄사’와는 차이가 있다.

기획단계부터 연출자 역시도 “도전에 나섰다”고 하는 ‘조력사망’의 코드는 여러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막을 내린 JTBC의 드라마 ‘에스콰이어: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에서도 조력사망이 소재로 등장한다. 극 중 한 남편이 처남의 신고로 체포를 당하고, 남편은 아내의 조력사망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작품에서도 드라마는 조력사망을 방조한 남편의 입장도, 치매 판정을 받은 누나의 사망을 지켜보고 분노하는 처남의 입장도 설득력 있게 그려지며 촬영 현장 안에서도 배우들의 의견이 갈리는 등 토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오는 15일 공개되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도 조력사망의 설정이 등장한다. 극 중 친구관계인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은 10대부터 40대까지 서로를 선망하고 원망하는 관계를 이어오다, 갑자기 상연이 40대에 나타나 자신의 조력사망 여정에 동행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극이 대단원에 이른다.

김고은은 지난 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극 중 스위스로 떠난 주인공들의 조력사망 여정에 대한 감정을 밝히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혀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과거에도 한국의 드라마에는 ‘불치병’ 코드는 자주 등장했다. 기억을 잃는 ‘기억상실’ 그리고 갑자기 등장인물이 의식을 잃는 ‘교통사고’ 등과 더불어 이른바 ‘K-드라마’를 상징하는 세 가지 대표 클리셰(뻔한 설정)로 여겨지기도 했다. 과거 백혈병 등의 불치병이 순결함을 강조하는 죽음으로 비장미를 높였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불치병 코드는 극 중 상황을 일순간에 반전하는 요소로 쓰이기도 했다.

드라마평론가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조력사망’ 코드가 지금 등장하게 된 것은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상황에서 죽음에 대해 더욱 직시하게 된 지금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지금 조력사망을 다루는 작품들은 과거처럼 죽음을 ‘장치’로 쓰지 않고, 죽음을 앞뒀거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금 더 깊이있게 다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조력사망’의 코드는 이를 겪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마주 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외면받는 소재일 수 있다. 작품성과 성취에 별개로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메리 킬즈 피플’의 성적이 그렇다. 아무래도 기획이나 연출에 있어 이런 대중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죽음’이 과거에는 비장미를 주는 수단, 최근에는 반전의 수단으로 쓰였다면 지금의 ‘조력사망’ 코드는 죽음 자체를 탐구하고 생각하는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