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 통과되며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치권에서도 ‘한국판 지니어스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8일에는 여야 의원들이 같은 날 법안을 발의하며 경쟁이 붙기도 했는데요, 미국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적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대체 스테이블코인이 뭐길래 여야, 국가를 막론하고 입법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주요 쟁점들을 국회에 발의된 3개의 법안(민병덕·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발의)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뭔가요?

스테이블코인은 흔히 아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의 한 종류입니다. 이름에서 비춰보듯 안정성이 핵심인데요,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 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습니다. 이를 민병덕 의원 법안에서는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원화 또는 외국 통화의 가치와 연동되면서, 환불이 보장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안도걸 의원 안은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 김은혜 의원 안은 ‘가치고정형 디지털자산’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다들 흔히 쓰는 ‘가상자산’이라고 하지 않은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민 의원은 앞서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는 민주당’ 강연에서 “가상자산이라고 하면 없는 것에 투자하는 것 같은 인상”이라며 “부정적인 이름 대신, 디지털 상에 있는 화폐, 실질적인 자산이라는 의미로 디지털 자산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전히 가상자산은 투기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만큼 결제수단, 화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취지로 읽힙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누가 만드나요?

세 법안의 공통점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를 은행권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 의원과 김 의원 법안은 발행 주체를 주식회사와 금융기관, 외국 법인으로 규정합니다. 대신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금융위원회가 인가제로 관리하도록 하고, 일정 규모의 자본금을 갖고 있는 발행사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습니다. 민 의원 법안은 자기자본 5억 원 이상, 나머지 두 법안은 자기자본 50억 원 이상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민간에서 무분별하게 발행되면 한국은행의 정책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안 의원은 이런 우려를 반영해 법안에 금융위원회와 한은, 기획재정부가 참여하는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설치해 통화·외환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한은과 기재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부여했습니다.
발행사가 이용자에게 코인 상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중요한 사항을 허위 기재할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과징금 상한은 민 의원과 김 의원은 20억 원이고, 안 의원은 50억 원으로 가장 높습니다. 발행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보안상 문제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도 모두 담겼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왜 만들어야 하나요?
그렇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대체 왜 필요한 걸까요?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으로 가장 흔하게 꼽히는 것은 신속성입니다. 하지만 이미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같은 간편 결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한국에서 더 빠른 결제수단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카드 결제를 예로 들면 가맹점에서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부가가치통신망(VAN)사를 거쳐 오던 기존의 결제 시스템에 비해 수수료를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특히 개인보다는 송금 규모가 큰 기업들이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한국에서 미국으로도 몇 분 안에 돈을 보낼 수 있고, 해외송금 수수료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여야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토큰증권(부동산, 미술품 등을 토큰화해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의 주요 결제 수단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정치권이 입법을 서두르는 데는 편리함 외에도 ‘통화주권 확보’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나선 만큼 한국도 하루빨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해 최소한의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민 의원은 BTS 콘서트 티켓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게 하는 등 K컬처와 연계한 활용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법안 통과는 언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만큼 정부와 여당의 법제화 의지는 확고해 보입니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의 싱크탱크 ‘해시드오픈리서치’의 대표였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이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된 것에서도 가상자산 정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드러납니다. 민 의원은 앞서 “올해 안에 (법안 처리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직 정부안이 나오지 않았고, 국회에서 이제 막 논의가 발을 뗀 만큼 상임위원회 차원의 법안 심사가 끝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장 22일 열린 ‘경제는 민주당’ 강연에서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화폐량이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오는 것 아니냐’ ‘자산시장의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우려가 이어졌습니다. 또 법안마다 3개월(민병덕)에서 1년(김은혜)의 시행 유예 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법안 처리가 끝난다고 해도 실제로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되는 시기는 빨라도 2026년 상반기가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