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역대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시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식수 공급의 마지노선인 1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정부는 자연재난으로는 처음으로 강릉시를 재난사태 지역으로 선포하고, 가뭄 대응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 등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1일 월요일자 1면 사진은 전국에서 지원을 나온 소방차들이 강릉의 한 정수장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장면입니다. 사진뉴스 거리가 많지 않은 일요일에 강릉 가뭄은 거의 유일한 뉴스처럼 보였습니다. 후배 기자를 급히 강릉으로 보내고, 저는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급수하는 소방차의 굵은 호스가 바닥에 정신없이 놓여 있는 그림, 급수장 앞 줄지어 있는 소방차들의 행렬을 드론으로 본 그림 등등. 하지만 경험을 더듬어 머리로 그렸던 그런 그림은 없었습니다. 사진은 변화무쌍한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지,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 방중 직전 ‘무력 과시’ (9월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을 위해 1일 오후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출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을 태운 열차는 중국 단둥~베이징 노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2019년 1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4차 정상회담을 한 이래 6년 8개월 만입니다. 북한 정상이 다자 성격의 해외 일정에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1980년 김일성 주석의 유고슬라비아 전 대통령 장례식 이후 45년 만이랍니다.
2일자 1면 사진은 김 위원장이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날 미사일 공장을 찾은 모습입니다. 핵탄두 미사일 생산 능력 과시와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메시지로 해석이 됐습니다. 김정은이 평양에서 출발하는 장면이나,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위를 지나는 전용열차 사진이 올라오기를 바랐으나, 순진한 기대와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 김정은, 딸 주애와 베이징 도착 (9월 3일)

김정은 위원장이 2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 ‘태양호’를 타고 이날 오후 4시쯤(현지시간) 베이징역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오후 평양에서 출발한 열차는 이날 오전 1시 이전에 중국 국경을 넘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했습니다. 베이징역에는 중국 공식 서열 5위인 차이치 중국공산당 서기와 왕이 외교부장 등 주요 간부들이 영접을 나왔습니다.
3일자 1면 사진은 베이징역에 내린 김 위원장이 영접 나온 중국 간부들과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김정은 뒤로 딸 주애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날 1면 사진은 네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북한 매체가 보도한 전용열차의 평양 출발 전으로 보이는 김 위원장 사진을 썼다가, 베이징역 인근에 도착한 전용열차 사진을 썼다가, 다시 김 위원장이 베이징역에 내리는 사진, 그리고 김 위원장과 영접 나온 중국 간부들과 인사하는 사진 순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북한 매체가 도착 당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남한 매체의 큰 관심사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테지요. 발행한 사진은 서너 장이 전부였습니다. 주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거의 모든 일간지가 이 사진을 썼습니다.
■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선 북·중·러 (9월 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나란히 참관하며, 북·중·러 정상으로 66년 만에 한자리에 섰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김 위원장이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로서 자신의 입지를 세계에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날 열병식은 북·중·러가 결집해 그간 미국 중심이었던 세력 균형을 재편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됐습니다.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1면 사진은 북·중·러 세 정상이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서서 박수치는 모습입니다. 오전에 생중계로 진행된 행사였지만, 누구나 1면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던 이 사진은 오후 사진회의 시간이 돼서야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딱 한 장. 전 세계의 매체가 어떤 사진을 써야 하는지를 꼭 집어서, 다른 사진 선택지는 주지 않은 채 말이지요. 한 장이라도 올려줘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 확실한 통제가 가능한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 악수하는 북·중 정상 (9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방문 사흘째인 4일(현지시간)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약 6년 만에 이뤄진 두 정상 간의 회담은 북·중·러 3국의 반미 연대의 공조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성사됐습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와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이날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자회담을 했습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 발전과 국제 정세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1면 사진은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 일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언제, 어디서 하는지 아무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저 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도. 마냥 사진을 기다렸습니다. 회담이 시작됐다는 속보가 뜨고 한참이 지나도록 사진은 감감무소식. 첫 판(밤사이 기사를 업데이트해 보통 두 번 정도 판을 만듭니다) 최종마감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동안 극적으로 한 장의 악수 사진이 외신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국제적인 ‘쪼임’을 의식한 탓인지 계획보다 서둘러 올려준 듯했습니다. 고르고 말고 할 것 없이 달랑 한 장. ‘이 사진을 써라’는 말이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사진의 발행 시점과 발행 사진 수도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