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랩소디 속 전통주] (4) 쌀 없이 만든 환상의 향 ‘문배주’

2025-02-06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주랩소디’가 2월 초 기준 인기 프로그램 3위에 오를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우랩소디, 치킨랩소디 등으로 이어진 ‘랩소디 시리즈’는 음식과 술,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며 사랑받아 온 푸드 인문 다큐멘터리다. 이번 진행(프리젠터)도 백종원 요리연구가가 맡았다. 본지는 전통주 소믈리에의 시각에서 소주랩소디에 등장한 화제의 우리술을 심층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넷플릭스를 보다가 궁금증이 들었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겨울, 우리술 한잔이 간절해질지 모른다.

“넣지도 않은 재료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겨 나오는 술이 좋은 술입니다.”

‘우리술익스프레스’의 저자이자 여행다큐멘터리 PD인 탁재형씨는 넷플릭스 ‘소주랩소디’에서 이런 말을 한다. 술에선 어떤 향기가 날까. 그저 알코올 냄새? ‘초록병 소주’라고 불리는 희석식 소주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중국 고량주, 프랑스 코냑, 멕시코 데킬라, 스코틀랜드 위스키 그리고 한국 전통 소주까지…. 대부분 증류주는 저마다 향이 있다.

예를 들어 위스키만 해도 한잔에 과일향, 꽃향, 곡물향만 아니라 오크통에서 나는 나무향, 증류주의 매콤한 냄새, 위스키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피트향, 페인티향(주로 술의 후류에서 나타나는 날것의, 거친향), 유황 냄새 등 다채로운 향기가 난다. 1970년대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런 향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고 ‘위스키 플레이버휠’을 만들었다.

플레이버휠이란 다양한 향이나 맛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원형 차트다. 우리나라는 이런 연구가 부족하다가 지난해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박사와 이승주 세종대 교수가 처음으로 ‘증류식 소주 플레이버휠’을 선보였다. 내용은 위스키 플레이버휠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전통간장이나 쌀밥향, 쌀겨향, 생쌀향, 삶은 구황작물 등 한국적인 향 요소를 넣은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소주랩소디’에서도 우리나라 소주 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백종원 요리연구가는 “원재료에 따라 향은 달라질 수 있다”며 “쌀로 술을 만들었을 땐 향이 얌전하고 고구마로 술을 만들면 향이 굉장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중국에서 수수로 만든 술은 은근한 꽃향이 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향기 나는 증류주 하면 ‘문배주(문배술)’를 빼놓을 수 없다. 문배주는 1980년대 지정된 3대 국가무형문화재 술 중 하나로, 셋 중 유일하게 쌀 없이 수수와 조로 빚은 술이다. 5대인 이승용 국가무형유산 문배주 전수자의 고조할머니가 평양에서 평촌양조장을 설립했는데, 이때 평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던 곡물이 수수와 조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술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술은 이름에 보통 주재료나 지역명이 들어간다. 문배주처럼 향기로운 술 중에서도 예를 들어 ‘이강주(梨薑酒)’는 이름처럼 배와 생강이 들어가며,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 또한 송홧가루를 넣는다. 문배주의 ‘문배’는 구수한 향이 나는 야생배인 ‘돌배’를 의미하는데 술에 실제 돌배를 넣진 않는다. 오로지 수수와 조로만 빚으면서 만드는 자연스러운 향이다. 이 향이 독특해 술의 주재료나 지역이 아닌 술의 향기만으로 이름을 붙인 게 흥미롭다.

문배주는 수수를 익혀서 1차로 술을 만들고 중간에 조를 익혀 넣어 두 번의 덧술을 거친다. 이러면 세 번 빚었다고 삼양주라고 부른다. 발효한 술은 감압식 스테인리스 증류기에 넣어 증류한다. 감압식 증류를 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목 넘김이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압식 증류보다 향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문배주는 복잡다단한 풍미가 느껴진다. 상압식 증류한 술인지 의심될 정도다. 다른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 전수자는 소주랩소디에서 “문배주는 처음 막 뽑혔을 때는 정말 향기롭고 과실향이 많이 난다”며 “20~30도로 도수를 낮추면 수수와 조의 곡식향이 많이 올라오는 술”이라고 묘사했다.

문배주의 은은한 향을 제대로 즐기려면 담백한 음식이 제격이다. 이승용 전수자는 다큐멘터리 소주 랩소디에서 ‘평양냉면’을 안주로 추천했다. 문배주양조원의 전신인 평촌양조장에는 평양냉면만 뽑는 기계까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평양냉면과 함께 술을 즐길 줄 알아야 진짜배기 술꾼으로 통한다. 오죽하면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주 한잔을 마신 뒤 평양냉면 육수를 들이켜면 혀에서 감칠맛이 폭발한다. 이제 냉면엔 초록병 소주 대신 문배주라는 ‘정석’에 도전해 보자. 술을 음미하며 돌배향이란 어떤 것인지 찾아보는 재미도 있겠다. 한식과 전통주의 조화가 더욱 향기롭게 느껴지며,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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