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 형태 온전한 완전립, 커피로 치면 ‘싱글 오리진’ 특등급

2025-10-17

박상현의 ‘찰나의 맛’

와인이나 커피 같은 기호식품은 품종과 산지 등을 공부까지 해가면서 먹는 사람들이 주식인 쌀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심하다. 당연한 이치다. 와인과 커피에 대해 해박하면 교양인 취급 받지만, 쌀에 대해 해박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평생을 매일같이 먹는 쌀에 대한 선택 기준을 갖고 있으면 삶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단일 품종·혼합 품종 쌀값 차이 거의 없어

커피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품종을 섞은 블렌드보다는 단일 지역에서 생산된 단일 품종인 싱글 오리진을 더 좋은 커피로 여긴다. 싱글 오리진에도 등급이 있어 ‘COE’나 ‘게이샤’ 등 스페셜티 커피를 최고로 친다. 원두를 볶기 전이나 볶은 후에는 균일한 맛을 위해 깨졌거나 상처 있는 콩을 솎아낸다. 볶은 원두는 가능한 공기 접촉을 차단하고 산패되기 전에 소비한다. 여기까지가 커피 애호가들이 원두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을 커피 뿐만 아니라 쌀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단언컨대 당신의 밥상은 지금보다 훨씬 맛깔나고 풍요로울 수 있다.

지금부터 그 기준을 한 번 알아보자. 우선, 왜 지금 쌀 이야기를 하는 지가 중요하다. 이맘때 시중에는 2025년에 수확한 햅쌀이 유통되고 있다. 가을이니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함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쌀은 전년도에 수확한 것이 원칙이다. 즉 2025년에는 2024년에 수확한 쌀이 유통된다. 그런데 쌀의 수확기인 9월~11월에 전년도 쌀과 당해 년도 쌀이 같이 유통된다. 즉 지금은 작년 이맘때 수확한 쌀과 최근에 수확한 쌀이 함께 유통된다. 1년을 묵힌 쌀과 갓 수확한 쌀이 있다면, 당연히 신선한 쌀을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쌀 포장지에 ‘햅쌀’이라는 표기가 있는지, 혹은 생산 연도가 2025년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장 신선한 쌀을 먹을 수 있는 시기에 자칫 가장 오래 묵힌 쌀을 소비할 위험이 공존한다. 그래서 주의가 필요하다.

생산 연도 다음에는 품종, 등급, 도정 연·월·일을 따질 차례다. 물론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모두 쌀 포장지의 겉면에 ‘품질표시사항’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판매자가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곡 관리법에 의거 법률로 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

먼저 품종을 보자.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쌀은 대부분 ‘혼합’이었다. 즉 누가, 어디서 재배한,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없는 쌀들이 대부분이었다. 커피로 치면 블렌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일 품종이 표시된 쌀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좋은 품종의 고품질 쌀을 선택하려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커피에서 싱글 오리진을 더 고급으로 치듯 쌀에서도 당연히 단일 품종의 장점이 많다. 심지어 커피는 블렌드보다 싱글 오리진이 훨씬 비싸지만, 쌀은 혼합과 단일 품종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일본 ‘고시히카리’에 안 밀리는 한국 쌀

두 번째는 등급. 쌀의 등급은 ‘특·상·보통’ 셋으로 나뉜다. 쌀알의 형태가 온전한 것을 완전립(정상립)이라 하고, 깨졌거나 상처 입은 쌀알을 불완전립이라 한다. 쌀의 등급은 완전립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좋은 커피 맛을 위해 결점 있는 원두를 애써 골라내는 것처럼 밥 역시 쌀알의 형태가 온전할수록 밥맛과 식감이 좋다. 그렇다고 특등급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철원 오대쌀 같은 조생종 품종이나,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의 경우에는 태생적으로 불완전립의 비율이 높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상’등급이 최고일 때도 있다. 관행 농법으로 재배된 쌀의 경우 완접립의 비율이 90% 이상일 경우 통상적으로 특등급을 받는데, 간혹 포장지에 ‘완전미’라고 표기된 경우가 있다. 이는 완전립의 비율이 96% 이상일 경우 표기할 수 있다. 온전한 쌀로만 지은 밥맛을 느끼고 싶다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세 번째는 도정일. 도정이란 볍씨의 껍질을 벗기고 표면을 깎아 현미를 백미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일단 볍씨의 껍질을 벗기는 순간부터 신선도는 떨어진다. 커피의 경우 원두를 볶은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방 성분이 표면으로 나와 반질반질 하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때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최대한 빨리 소비하길 권장한다. 껍질을 벗긴 쌀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다만 커피처럼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그래서 쌀은 아무리 오래 두더라도 괜찮은 줄 착각한다. 쌀의 소비 기한을 커피 만큼만 준수해도 훨씬 맛있는 밥맛을 경험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는 쌀의 소비 기한을 봄과 여름에는 도정 후 2주, 가을과 겨울에는 4주 이내로 권장한다.

요약하면 2025년에 생산된 쌀인지 확인한 다음, 품종의 경우 ‘혼합’보다는 단일 품종을, 등급의 경우 특등급을, 도정일의 경우 구입일을 기준으로 2~4주 이내. 이상의 네 가지 사항만 확인하면 올해 수확된 신선하고 맛있는 쌀을 선택할 수 있다. 끝으로 쌀에도 커피의 COE나 게이샤처럼 프리미엄 등급이 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은 2000년 이후 그해에 개발된 쌀 가운데 최고의 품종을 뽑아 ‘최고 품질 품종’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 품종들은 맛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최고의 품종이라 불리는 ‘고시히카리’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기억하셨다가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길 권한다.

☞최고품질 벼 품종(21종)=삼광·운광·고품·호품·칠보·하이아미·진수미·영호진미·미품·수광·대보·현품·해품·해담쌀·청품·진광·해들·예찬·알찬미·안평·미소진미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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