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수첩] 누구를 위한 피해 복구인가

2025-02-12

이재민 지원 절차 혼란

알타데나 주민들 막막

지원 부족, 자구책 분주

이달 초 가주 및 LA카운티, LA시 정부는 대형 산불 피해 복구 및 이재민 지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피해 주민들은 정부 지원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일과 6일, 이튼 산불로 황폐해진 알타데나를 다시 찾았다.〈본지 2월 10일자 A-1면〉 이곳에서 만난 이기선(81)·유정자(75)씨 부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부부는 이곳에서 38년간 ‘페어옥스 버거(Fair Oaks Burger)’라는 햄버거집을 운영했다. 이씨는“정부가 지원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작 피해 복구나 이재민 지원에 대한 안내를 구체적으로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알타데나는 자체 시정부가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어느 기관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부부의 막내딸 크리스틴 이씨는 “알타데나는 LA카운티 관할이지만, 패서디나 시정부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정확히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커뮤니티 활동가 수잔 박씨도 피해 복구가 더딘 원인으로 지방 정부의 관할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알타데나에는 LA카운티 사회복지국(DPSS) 지부도 없어, 주민들이 이웃 엘몬테에 있는 DPSS 지부를 통해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지원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산불 발생 이후 가주와 LA카운티는 피해 복구를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달 23일 LA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25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LA카운티도 최근 기금 펀드를 조성해 3220만 달러를 확보했다. 하지만 피해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실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다.

정부의 구제 신청 절차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일례로 지난 3일 LA한인회,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 LA법률보조재단이 공동으로 산불 피해자를 돕기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KABA 회장 패트리샤 박 변호사가 연방 재난관리청(FEMA)의 지원 절차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를 단번에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어떻게 신청해야 하느냐”며 다시 질문을 쏟아냈다.

정부 지원이 원활하지 않자, 같은 처지의 주민들이 서로를 돕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일 페어옥스 버거 측이 개최한 ‘알타데나 지원 행사(Altadena Wellness Event)’에는 5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본지 2월 11일자 A-1면〉 이씨 부부는 집에서 직접 준비해 1000인분의 치킨 타코를 현장에서 나눠주었고, 여러 비영리 단체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제공했다.

지역 정부는 이러한 행사를 ‘훌륭한 선례’라고 평가하기보다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을 민간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주와 LA카운티를 비롯한 지역 정부는 피해 주민들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단순화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재난 복구의 책임은 주민들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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