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상어, 뜨거워진 바다의 경고

2025-09-08

‘빠~밤, 빠~밤’ 단순하나 섬뜩한 두 음(미·파)의 반복. 이어 수면 위로 나타난 삼각형의 지느러미. 마침내 거대한 두 턱이 등장하고, 스크린은 붉은 피로 물든다. 1975년 6월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죠스’ 얘기다. 상어와 인간의 대결이란 파격적인 스토리,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카메라 워크, 한 번만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주제음악의 결합으로 헐리우드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난류성 어류 좇아 북상하는 상어

해수온 상승 속도 ‘세계 평균 2배’

온난화 가속화, 폭염·폭우 악순환

개봉 50주년을 맞은 지난 여름 외신들은 영화, 제작진에 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쏟아냈다. 주인공(?) 상어에 관한 보도도 있었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영화 흥행이 상어 수 급감을 초래했다는 ‘죠스 효과’를 조명했다. ‘상어는 인간에 해롭다’란 편견이 퍼져 상어 낚시 대회가 급증했고, 각국 정부가 상어 남획 구제에 소홀히 한 원인이 됐다. 하긴 인간에 의해 죽는 상어가 한해 1억 마리, 상어에 물려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연평균 7명 정도니, 죠스가 심은 상어에 대한 공포가 과도하긴 한 것 같다. 매체는 긍정적인 효과도 지적했는데, 영화 덕에 상어 보존에 관심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피터 벤츨리(1940~2006)의 아내로, 남편과 함께 상어 보호에 매진한 웬디 벤츨리는 “영화가 불러일으킨 열정이 상어 보존과 해양 보호에 강력한 도구가 됐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지난 여름 국내에서도 상어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 7월 10일 강릉 안목해수욕장 앞 3㎞ 해상에 있던 낚싯배 주변을 길이 2m의 청새리상어가 배회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일주일 뒤 고성군 대진항 앞바다에선 청상아리가 낚시에 잡혔다. 앞서 4월엔 경북 울진 후포항에 설치된 그물에 길이 3m, 무게 229㎏의 대형 청상아리가 걸리기도 했다.

2000년대까진 발견되는 상어 대부분 수온이 비교적 높고 수심이 얕은 서해와 남해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최근 동해에서 발견된 사례가 늘었다. 혼획·발견 신고 집계를 시작한 2022년 1건에서 2023년 15건, 지난해 44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현재까지 29건이다.

‘생태계 복원으로 상어가 돌아왔다’는 얘기라면 좋으련만, 실상은 반대다. 전문가들은 수온 상승으로 난류성 어종이 늘면서, 이들을 먹이 삼는 상어도 동해로 유입했다고 본다. 실제로 사체 속 위장에선 방어·고등어 같은 난류성 어종이 발견된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뜨거워지는 바다’로 불린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1982년~2024년 사이 10년당 0.24도 상승했는데, 전 세계 평균(0.13도)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동해가 심한데, 지난해 표층 수온(수심 10m까지)은 역대 최고인 18.84도를 기록했다. 1968년부터 57년간 우리 바다의 표층 수온은 평균 1.58도 올랐는데, 동해는 2.04도 상승했다.

해수온 상승은 어업, 관광업만의 피해를 뜻하지 않는다. 학계에선 지금껏 온난화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바다가 ‘가속 장치’로 변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껏 바다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3분의 1, 열의 90%를 흡수했다. 그런데 수온이 상승하면서 이런 능력을 잃었을 뿐더러, 이젠 태풍·폭염 등의 기상 이변을 부채질한다.

이번 여름 우리는 이런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40도가 넘는 극한 폭염, 시간당 최대 200㎜의 극한 폭우, 최장 기록을 갈아치운 열대야, 이에 따른 홍수와 가뭄 피해 말이다. 기상청은 평년보다 높은 바다 수온과 이에 따른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뜨거워진 바다가 고기압을 북쪽으로 밀어 올려 장기간 한반도를 덮쳤고, 고수온으로 인해 늘어난 수증기를 흠뻑 품은 대기의 불안정에 폭우가 빈발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경보 체계와 재난 대비 시스템, 탄소 감축 등을 포함한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영화에서 죠스의 존재를 확인한 경찰서장은 해수욕장 개장을 미루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관광 수입을 우선한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해변은 피로 물든다. 상어에 대비해 지난달 초 강원도는 도내 해수욕장에 상어 접근을 차단하는 방지망 설치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피서객의 안전을 확보하는 조치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건 영화와 달리 상어보다 훨씬 거대한 위험, 본격적인 기후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동해 상어는 달궈진 바다, 뜨거워진 지구가 보내는 경고다. “기후는 변하는데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욱더 불타오르게 될 것”(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란 경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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