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더위를 식혀줄 ‘귀신’ 앤솔로지가 연이어 나왔다. 전설을 재해석하고 전통의 세시풍속을 기반으로 풀어낸 호러 소설들은 현시대 인간의 고민과 욕망을 공포와 함께 녹여낸다는 점에서 매력이 배가된다.
<귀신새 우는 소리>(북다)는 2018년 호러 작가 몇몇이 결성한 창작 그룹 ‘괴이학회’ 소속 작가인 박소해, 류재이, 이지유, 유상, 무경, 위래 등 6명의 작가가 ‘전설의 재탄생’이라는 콘셉트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여우의 눈을 가진 주인공이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여우의 미소’부터 쇠락한 고을에 방문한 어사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머리만 남은 이상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웃는 머리’등이다. 줄거리를 보고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찾아오던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떠올린다면, 맞다.
책 기획을 주도한 박소해 작가는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처음엔 ‘괴력난신’이라고 해서 동물과 귀신이 결합한 이상한 존재를 다루려고 하다가 ‘전설의 고향’ 컨셉을 잡았다”며 “대신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이 시대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가 쓴 ‘폭포 아래서’는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폭포 앞에서 피리를 불자, 이에 반한 용녀가 그를 유혹해 결국은 물에 빠져 죽게 했다는 ‘박연폭포’의 전설을 차용한다. 박 작가는 “과거 소설가 정보라가 용녀에 대해 ‘요즘 현대 여성에 근접한 캐릭터’라고 말한 것을 인상 깊게 봤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전통의 풍속과 장르 문학을 잇는 시도는 또 있다. <귀신이 오는 낮>(구픽)은 음력 1월 16일 ‘귀신날’을 다룬 소설이다. 2022년 출간된 <귀신이 오는 밤>의 후속작 격이다. 옛 조상들은 귀신날에 일을 하거나 남의 집에 가면 귀신이 붙어와 몸이 아프게 된다고 믿었다. 배명은 김이삭, 이규락, 전효원, 오승원 5명의 작가가 함께했다.
“귀신날은 머슴들이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대보름에 실컷 논 양반 놈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들었겠지.”(‘KILL, HEEL’ 중)
귀신 이야기를 단순한 괴담이 아닌 현시대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이면을 말할 수 있는 소재로 삼는 것은 최근 호러 작품의 특징이다. 박 작가는 지난해 말 괴이학회 회원들과 제주의 슬픈 역사와 고딕 호러를 결합한 <고딕 X 호러 X 제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추리 소설은 꾸준하고 몇 년 전부터는 SF가 각광받고 있다. 이제 호러의 물결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젊은 호러 작가들이 많이 등장해 다양한 형식과 소재의 소설들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