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터뷰 | ‘원로’ 인명진 목사의 직설

2024-10-23

“맛 잃은 소금은 땅에 버려질 뿐…민심 잃은 정권의 운명도 그렇다” _유길용

‘원로’ 인명진 목사의 직설

윤 대통령 스스로 아집 내려놔야 남은 임기 만회할 카드 생겨

정치 혼란은 큰 불행… 아들 구속시킨 YS, DJ의 결단 되새겨야

인명진(78) 목사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경계인’이다. 민중신학의 본산인 한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영등포에서 도시 빈민과 노동자를 위해 목회활동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보수정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재건에 참여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좌우를 오간 이력 때문에 ‘회색분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래도 자리를 탐하지 않고 자기 역할이 끝나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인 목사의 올곧았던 삶의 궤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원로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2016년 탄핵 사태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보수의 현실을 짚어보기 위해 월간중앙이 인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10월 15일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인 목사를 만났다.

“내조만 하겠다던 김 여사 약속, 국민은 또렷이 기억해”

요즘 모든 뉴스가 김건희 여사 문제로 난리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TV에 김 여사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린다고 하더군요. 왜 그렇게까지 밉상이 됐는지 본인이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남편을 위해 본인이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지 잘 판단해야 해요.”

처음에는 도덕성 문제였는데 이제는 수습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일이 커졌습니다.

“디올백 같은 경우도 그냥 ‘제가 실수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었어요. 그런데 윤 대통령도 사과를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게 하더군요. 도이치모터스도 본인이 잘못한 게 없다면 당당하게 조사받아야죠. 적어도 국민들 사이에 ‘대통령 부인인데 너무 심하게 조사하는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했어야죠.”

김 여사를 감싸는 윤 대통령 태도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상식을 넘어서는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여요. 나 같으면 (부인과) 싸웠을 것 같아요, 가만히 좀 있으라고. 그런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안 싸웠다는 거 아니에요? 요즘 아내들이 남편한테 그런다는군요. 윤 대통령 좀 본받으라고요.”

김건희 여사 만나본 적 없으십니까?

“난 본 적도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을 뭐하러 보겠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참 불행해요. 대통령 부인이라고 해도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한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게 참 불행한 상황이에요.”

주위에서 대통령에게 김 여사 문제에 관해선 말도 못 꺼낸다고 하더군요.

“금기가 있으면 안 돼요. 조선시대에도 중전이 잘못하면 사가(私家)로 보냈어요. 김 여사 문제도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선 전에 본인이 국민 앞에 사과하면서 내조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국민이 다 기억하고 있어요.”

참모들이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됐던 걸까요?

“사실 친구끼리도 남의 부인 얘기는 껄끄럽긴 하죠. 하지만 대통령 부인 문제잖아요. 참모들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큰일 할 기회가 왔는데 부인 문제 때문에 못 하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국정이 올스톱됐으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요. 한 사람 때문에 정치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갈등이 심해지는 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에요. 그게 누구든 역사의 진전을 막을 권리는 없어요. 그런 면에서 본인들이 잘 결심해야 합니다.”

인 목사는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들 현철 씨가 정권의 리스크로 떠올랐을 때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들려줬다. YS 집권 당시 김현철 씨는 문민정부의 ‘소통령’이라고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모든 정보가 그에게 집중됐고, 대통령에게 그의 전횡을 ‘간언(諫言)’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잘려나갔다.

“김현철 씨에 관해 안 좋은 소문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본인은 결백하다고 했어요. 구체적인 범법 행위도 드러나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도 YS는 ‘소문 난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뭐든 걸어서 잡아넣으라고 했어요. 조용히 내조만 하시던 손명순 여사마저 어떻게 당신 아들을 감옥에 넣으려고 하냐며 울면서 말렸어요. 마산에 계시던 YS의 아버지도 왜 손자를 잡아넣으려 하느냐고 나섰고요. 그래도 YS는 뜻을 굽히지 않고 기어코 아들을 감옥에 넣어 버렸어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민심을 달래고 정부 기강을 다잡을 본보기가 필요하다고 봤던 거죠. 국민이 원하는 제물이 필요했단 말이에요. 오죽하면 DJ도 두 아들을 구속시켰겠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와 삼남 홍걸 씨는 DJ 재임 시절인 2002년 5월과 6월에 각각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공정·상식 기대했는데…부인 문제부터 공정하지 않아”

대통령 지지율 20%도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찾아 보니 임기 중반 노무현 대통령이 기록한 25%가 최저치였는데 기록을 깨버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보니 20% 아래로 내려가면 걷잡을 수 없이 빠지더군요. 보수가 망하는 거예요. 내각제였으면 아마 벌써 총사퇴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쨌든 임기가 남아 있으니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길 바랄 뿐이에요. 정부가 실패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어요. 정부가 망하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지지율 하락 원인은 역시 김건희 여사 문제겠죠?

“검찰총장 했던 사람이 대통령 되겠다면서 맨 처음 말한 게 무엇이었나요. 공정과 상식이었어요. 국민도 그걸 기대해서 대통령으로 선택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니 부인 문제부터 공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 등 돌릴 수밖에요.”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셨던 거로 압니다. 윤석열 후보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나요.

“국민의힘이 윤석열 후보를 내세웠을 때 나는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검찰총장 하던 사람을 갑자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정치는 해본 사람, 준비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정계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고요.”

그래도 윤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목사님도 기여하지 않았나요.

“처음부터 단일화를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안 후보 정치 커리어가 상당했기 때문에 윤 후보보다 대통령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국민 지지를 못 받았어요.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안철수로 단일화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윤 후보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요즘 명태균 씨는 자기가 단일화했다고 하던데 나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윤 대통령에게 기대 많이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역시 준비된 대통령이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당 안에서도 대통령실 운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윤 대통령이 의욕도 있고 다 좋은데 역시 경험이 없는 게 문제예요. 인사도 서툴러요. 자기가 잘 모르면 정무적 감각이 좋은 사람을 써야 하는데, 국회의원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을 정무수석에 앉히고…. 정무수석은 적어도 3선쯤 되는 사람을 앉혀 놔야 야당을 상대할 거 아닙니까. 노무현 정부 때에도 시민사회수석은 수시로 내게 연락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는 연락 한 번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정무 경험 없는 관료 출신을 앉혀 놓으니 일이 되겠어요?”

예전엔 대통령이 각계 원로들을 초대해서 민심을 듣기도 했는데 이 정부 들어선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참모들이 바보 같아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원로를 데려다 대신 하게끔 하면 되는데 말이죠. 예전 정치인들은 그런 지혜라도 있었어요.”

의료개혁도 이렇게까지 문제를 키울 일인지 의문입니다.

“대통령이 나서면 안 되는 거였어요. 복지부 장관을 내세웠어야죠. 전투가 벌어지면 사령관은 뒤에 있어야지 맨 앞으로 나가버리면 누가 전쟁을 지휘합니까.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역대 대통령들이 왜 실패했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계획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민심이 흉흉한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성경에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땅에 버려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민심을 잃은 정권의 운명도 그와 같아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2년 반 동안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지만 상황이 비관적이에요.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아요. 국회에서 뭘 할 수도 없고요.”

“정무 경험 없는 관료를 정무수석 앉히니 일이 되나”

윤 대통령이 탈당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탈당하면 국민의힘이란 보호막도 사라질 텐데요? 그럼 진짜 탄핵이죠. 그런 선택은 안 할 거예요.”

당에서 윤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가능성은 있지 않나요?

“그럴 순 있죠. YS, DJ, 노무현 세 명의 대통령이 임기 말에 탈당했어요. 본인들 의지가 아니라 당이 요구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래서 모르겠어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만회할 방법은 없을까요?

“대통령 본인이 아집을 내려놔야 쓸 수 있는 카드가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 돌아보고,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갈등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전례가 없는 건 아니에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무성 대표가 맞섰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회창 대표가 맞섰어요. 한데 결국 어떻게 됐나요? 김무성 대표는 대선 주자에서 밀려났고, 이회창 대표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졌어요. 당대표가 대통령과 대립하는 건 정치를 모르는 미련한 짓입니다. 대통령과 함께해야 하는 건 여당 대표의 숙명이에요. 공개적으로 독대하자고 하는 건 야당 대표가 영수회담 요청할 때나 그러는 거지 여당 대표가 할 짓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한동훈 대표는 상당히 서툰 사람입니다.”

그래도 보수진영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한동훈 대표가 가장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이것도 긍정적이지 않아요. 적폐청산한다고 하면서 결국 보수를 궤멸시킨 장본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국민의힘 당원들이 참 너그러워요. 이런 사람을 당대표로 앉히다니. 적어도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한 대표는 뭘 했나요? 보수에 대한 미안함도 없는 것 같아요.”

YS, DJ, 노무현 당의 요구로 임기 말 탈당

조만간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독대한다고 합니다. 둘이 만나면 뭔가 결단이 나오지 않을까요.

“한 대표가 밖에서나 그러지 직접 대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시 윤 대통령이 먼저 의견을 물어보면 조심스레 말할 순 있겠지만. 한 대표라고 해도 말하기 어려울 거예요. 어쨌든 서로 갈라서면 둘 다 망하는 건 분명합니다. 한 사람만 이기는 일은 없어요. 운명공동체란 말입니다. 쇼라도 해야 해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맡았을 때에도 친박과 비박 갈등이 상당했죠?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자기들이 만든 대통령이 탄핵당했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고 자타가 말하는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그렇게 세 사람을 찍었어요. 그땐 당원권 정지가 최대 1년이었는데 내가 3년으로 바꿨어요. 국회의원에게 당원권 3년간 정지 처분을 내린 건 아마 정당 역사상 처음이었을 거예요.”

이곳저곳에서 많은 공격도 받으셨죠.

“일부에선 ‘실패한 비대위원장’이라고 하는데, 난 동의 안 해요. 다 망하는 정당 가서 책임질 사람 다 처분했고, 2차 3차 탈당 막았는데 내가 뭘 실패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 오세훈 지금 서울시장도 원외 당협위원장들 20여 명 데리고 나가려고 하다가 내가 막아서 결국 혼자만 나갔어요.”

인 목사는 1987년 민주화의 봄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대변인을 맡았고, 당시 대선 과정에서 YS와 DJ의 분열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창설해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으로 보수정당 재건에 가담하면서 양쪽 진영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땀이 서린 경실련으로부터 영구 제명되는 수모도 겪었다. 인 목사는 그런 자신을 두고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2016년에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으셨나요?

“그저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던 것뿐이에요. 소금의 역할은 맛을 내는 겁니다. 된장국이든 미역국이든 가리지 않고 맛을 내는 게 소금의 역할이에요. 진보가 필요하다 하면 진보의 맛을 내게 하고 , 보수가 필요하다 하면 보수의 맛을 내게 하는 게 기독교인의 ‘역할’이에요. 내 출세를 위해서도 아니고 자리를 탐해서도 아니었어요.”

비대위원장 역할을 마치고 나선 미련 없이 떠나셨죠.

“홍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고 나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홍 후보가 내게 상임선대위원장을 해달라고 부탁합디다. 난 거절했어요. 비대위원장은 비상시 상황을 책임지는 거예요. 대선 후보가 선출됐으니 내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이고요. 나중에 김종인 박사는 공천권도 휘두르고 그랬다는데 난 공천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헌정질서를 지키면서 탈당을 다 막았으니 어쨌든 성공한 셈 아닌가요.”

소금은 맛을 낼 뿐, 좌우 가리지 않아

소위 ‘태극기부대’라고 불리는 극우와 거리를 둔 것 때문에 보수에서도 비판받지 않았나요.

“지금 강원도지사인 김진태를 비롯한 몇몇이 당 차원에서 태극기집회에 참여하자길래 딱 선을 그었어요. 그런 건 개인 자격으로 알아서 하라고. 헌법에 의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인데 공당의 책임자로서 탄핵이 무효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랬더니 태극기집회 구호가 ‘박근혜 탄핵 무효, 인명진 아웃’이었다고 해요.”

그래도 꾸준히 정치권에 조언하거나 역할을 맡아오셨죠.

“YS가 때때로 불러 조언을 구하곤 했어요. 개혁이 필요한 자리는 비상임으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명박 정부와도 굉장히 가깝게 지냈어요. 정정길 실장(이명박 정부 2대 대통령실장)이 가까운 친구였고, 이재오, 장기표 씨가 다 나랑 동갑이고 함께 재야운동 했던 친구예요. 통일부 고문을 맡아서 현대아산 직원이 납북됐을 때 석방 관련 교섭에도 참여했고, 남북회담도 추진했어요. 지금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안 가요.”

지금 정치 상황을 보면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민망할 정도입니다. 정치를 복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는 정치 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어요. 87년 헌법의 핵심은 독재, 장기집권을 막는 데 있어요.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못 박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 사회는 너무나 다양해졌는데 당은 두 개뿐이에요. 찍을 정당이 없다고들 해요. 양당 중심의 정치 체제로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때에도 개헌의 적기라고 강조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개헌 운동의 모멘텀이 마련돼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와 맞붙은 문재인 후보가 도와 달라고 한 적 있어요. 그때 나는 문 후보에게 5년 임기 다 안 하고 개헌하겠다고 하면 당신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어요. 굉장히 심각하게 듣고 돌아갔지만, 그뿐이었어요. 나중에 만나서 왜 그때 내 말대로 안 했냐고 물었더니 ‘마지막에 될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당선될 것 같으니까 권력을 양보할 마음이 사라졌던 거죠.”

자기 임기 내놓겠다는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너무 요원한 일 아닌가요.

“개헌하려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한쪽이 양보해서 임기를 맞춰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시기가 있긴 있어요. 2032년이 바로 그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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