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놀라운 위기 자초 능력

2024-10-22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 메시지다. 21일 대통령실이 촬영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 메시지는 오독(誤讀) 불가였다. 먼저 악수다. 10년 전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자들에게 건넨 악수가 떠올랐다. 교황의 시선은 오롯이 당사자에게 머물렀다. 찰나였는데 영원했다. 충일감에 차오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분이 교황이라 다행이다. 정치인이었다면 페론을 능가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눈은 내달렸다. 외면이었다.

‘산책’도 그랬다. 한 프레임 안에 둘이 있어야 했다. 서천 화재 때처럼 말이다. 문재인-김정은, 트럼프-김정은의 산책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들로 한 대표를 에워쌌다. 배척이었다.

원만했다는 데, 영상엔 외면·분노

북 파병 속 국가전략 논의 절실한데

미봉조차 못한 한심한 여권 정치력

차담 사진은 더 그로테스크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만남은 소수일 경우 라운드테이블에서 한다. 이번엔 좁다란 테이블에 윤 대통령이 상석에 앉고, 반대편에 한 대표와 배석자인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붙어 앉게 했다. 더욱이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은 윤 대통령이 팔을 벌린 채 양손으로 테이블을 누르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 대표를 쏘아보는 장면이었다. 분노였다.

한때 윤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작가 오진영은 이런 인상평을 했다. “나한테 왜 그래요? 말해 봐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대통령실에선 처음엔 멀쩡한 회동인 양 포장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원만하게 마무리된 면담”이란 말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이미지를 내보내면 안 됐다. 설령 윤 대통령이 불쾌했더라도 이런 이미지를 내보내면 안 됐다. 민심을 전하는(윤 대통령이 수긍할 수 없더라도) 여당 대표를 대통령이 천대한 모양새가 됐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아니 만나느니만 못하게 됐다.

이번에도 재차 확인된 건 윤 대통령의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 상태다. 이토록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기분을 알게 되는 건 노무현 대통령 이래 처음이다. 공개 석상에서 속된 표현을 안 쓴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많이 참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에게 물어 보라. 문재인 대통령은 주변을 격하게 깨곤 했지만 그런 사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숨소리조차 고도의 정치여야 한다는 현실을 윤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이, 설명 또는 해명하면 될 일들이 논란으로, 위기로 커지고 있다. 놀라운 능력이다. 대선 과정에선 그나마 ‘결단’으로 풀었다. 5·18 발언 사과도, 이준석 당시 대표와의 ‘화해’도 그랬다. 지금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이번이 더 위험한 건 윤 대통령 통치의 특수성도 있다. 그간 윤 대통령이 고집 피울 때마다 돌려세운 건 김건희 여사였다. 어쩌면 정무를 김 여사에게 외주(外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참모가 김 여사의 참모이고 김 여사의 참모가 대통령의 참모인 비정상 구조를 낳았다. 이젠 위기의 진앙에 김 여사가 있다. 김 여사식 정무가 곤란해졌다. 다수의 민심은 물론 여당 지지자도 그 구조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데, 윤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으면서 김 여사는 더한 비난과 혐오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은 중상(中傷)이라고 감싸지만(그럴 근거도 있다), 믿어주는 이는 적다. 역사적 경험은 대통령이 지금처럼 해선 부인을 보호할 수 없다는 쪽이다. 대통령부터 산 뒤에야, 그러려면 부인 문제에 어느 정도 양보한 후에야, 부인을 보호할 여력이 생긴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감정에 휘감긴 듯,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난감한 일이다.

21일 회동을 보고 진정 화나는 건 따로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란 외교적 격변기에 국민적 시선을 국가 대(大)전략 논의로 이끌어야 하는데, ‘미봉’하는 모양새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둘, 특히 윤 대통령의 정치적 감수성 탓에 여전히 자기파괴적 ‘권력극’을 봐야 한다는 현실이다.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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