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한모(47·서울 은평구)씨는 혹시나 딸이 디지털 과몰입에 빠지진 않을지 걱정이다.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등 잠시의 틈만 생기면 여지없이 스마트폰을 켠다. 올해부터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할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했지만 소용없었다. 한씨 딸은 습관적으로 식탁 위 스마트폰을 들고서는 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한씨는 “하루는 친구들과 단지 내 놀이터에서 만난다고 해서 뛰어놀 줄 알았더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 SNS 영상을 보고 있더라”고 했다.
한씨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6명 중 1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인터넷·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5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습관 진단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진단된 청소년 비중은 17.3%(21만3243명)로 나타났다. 과의존 위험군은 위험사용자군(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어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 또는 주의사용자군(사용시간 조절이 어려워 주의가 필요한 수준)을 말한다. 이번 조사는 전국의 학령 전환기(초등 1·4학년, 중1, 고1) 청소년 및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초등 4학년 과의존 위험군은 5만7229명에 달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학생 건강권과 학습권 등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퍼지자 내년 1학기부터 초중고 수업 중 학생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어졌다. 해당 법안은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무난하게 통과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마트폰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도 관심을 받고 있다.

법 통과 전부터 아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가 있다. 대안교육기관인 고양발도르프학교다. 교실 안에는 흔한 전자칠판, 태블릿 하나 없다. 국·영·수, 제2 외국어 회화 등 수업 내용은 또박또박 판서로 전해진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대신 손으로 찰흙을 빚고 그림을 그린다. 때론 인형도 만들고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개인 스마트폰 역시 갖고 있지 않다. 자연 다큐멘터리 시청 등 필요할 때만 각 가정에서 보호자 지도 아래 스마트 기기를 제한적으로 쓴다고 한다. 검색도 포털사이트가 아닌 사전으로 먼저 찾아보기를 권장할 정도다.

지난해 4학년으로 편입한 한 학부모는 “물그림 그리기, 현악기 연주 등 손끝으로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된 것 같다”며 “이를 통해 어제보다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존감도 자랐다”고 했다. 이 학교 정미희 대표교사는 “아직 자신의 몸을 골고루 충분히 써야 하는 시기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시간을 보내면 행하는 힘을 키울 수 없다”며 “또 판단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성숙하지 않은 시기에 인터넷 정보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경우 느끼는 힘,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교내 제한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점차 ‘퇴출’ 분위기다. 스마트폰 등 사용이 시력저하는 물론 수면 방해, 활동량 감소에 따른 과체중·비만 위험 등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에서다.

외신을 종합하면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최소 11세 이전에는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권고한 바 있다. 또 11~13세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일반 휴대전화를, 14세에는 SNS에 접속할 수 없는 휴대전화 사용을 각각 권고하기도 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등교할 때 휴대전화를 수거해서 하교 때 돌려주는 조치를 중학교에서 시범 실시했다. 당시 벨루베 교육장관 대행은 “학생들에게 ‘디지털 일시 정지(digital pause)’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독일 역시 대부분 학교에서 교육 목적 외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 중이다. 영국 정부도 지난해 2월 ‘수업 시간 휴대전화 사용 금지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이밖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지난해 공립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휴대전화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