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전 세계 100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2025-10-15

일상의 기부자들 남도형 성우

남도형(42) 성우에게는 사진 앨범이 하나 있다. 지난 13년간 후원한 아이들 사진을 모아 둔 앨범이다. 전 세계 스물두 명 아이들의 성장 기록이 모두 담겨있다. 표지엔 ‘내 아이들’이라고 적어뒀다.

후원을 시작한 건 2012년이었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아프리카 차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맡았다. 녹음하면서 많이 울었다. 일을 마치고도 아이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굿네이버스를 통해 차드의 다섯 살 소년 도우모움 안토이네와 연결됐다. 매달 3만원 후원을 시작했다. 2006년 KBS 공채 성우로 데뷔한 뒤 프리랜서로 막 독립한 시기였다. 만 원 한 장도 아껴 써야 했지만 매달 후원금을 부치고 1년에 한 번씩 선물금도 보냈다.

남 성우는 게임·애니메이션·예능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점점 이름이 알려졌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 ‘쿠키런’과 애니메이션 ‘원피스’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블랙캣’, 예능 ‘흑백요리사’ 등의 더빙과 내레이션을 맡아 누구든 알만한 성우가 됐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기부도 늘렸다. 지금은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전 세계 12개국 아동 14명을 후원하고 있다. 결연이 종료된 아동까지 합치면 누적 22명을 키웠다. 지난 21일 서울 잠실한강공원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레이스 with 띵크어스’ 마라톤 현장에서 재능 기부 사회를 맡은 남 성우를 만났다.

후원으로 기른 22명의 아이

기부를 시작할 때 목표가 있었나요.

“열다섯 명의 아이를 후원하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 14명이니 올해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0명은 어딘가 아쉽고 20명은 버거울 것 같아서 15명으로 정했는데, 이제는 한 명이라도 더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내년에는 20명을 채우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없지만, 첫 결연 아동인 안토이네가 조금은 특별하죠. 네 살이던 아이가 벌써 열일곱 살이 됐어요. 작고 여린 아이였는데 이제 체격이 다부진 청년으로 컸어요.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다섯 살 여자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13년 전 안토이네처럼 정말 작아요. 이 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도 꼭 지켜보고 싶어요.”

한 명 한 명 추억도 많을 것 같아요.

“아이들 사진과 손편지를 모두 모아뒀어요. 사진은 앨범에 넣고 편지는 코팅해서 보관하는데 벌써 커다란 이삿짐 박스 하나를 다 채웠어요. 한번은 ‘저는 후원자님 덕분에 행복한데, 후원자님도 이 편지를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쓴 손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한창 힘든 시기였는데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했어요. 제가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위로받은 건 저였어요.”

선물금도 꼭 보낸다고요.

“매년 1월 1일마다 꼭 챙기는 작은 이벤트예요. 모든 아이에게 10만원씩 보내요. 처음엔 5만원을 보냈어요. 큰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나중에 굿네이버스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니 그 돈으로 염소 한 마리에 시멘트 한 포대, 옷, 빵, 우유까지 푸짐하게 샀더라고요. 제가 조금만 아끼면 되는 5만원이 한 가정에는 한 달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어요.”

받은 마음을 다시 전하다

후원을 계속 늘리는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가 호텔 룸메이드로 20년 가까이 일하셨어요. 늘 힘든 일을 하셨죠.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어머니는 비싼 도넛을 종종 사 오셨어요. 그 도넛을 제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투숙객들이 ‘감사하다’며 남기고 간 팁으로 사 오신 거였어요. 저는 그 나눔의 마음을 보면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후원 아동들에게 어릴 적 제 모습이 겹쳐 보여요. 제가 어릴 때 받았던 그 마음이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결연이 끝난 아이들이 그리울 때도 있겠습니다.

“결연 중간에 이사를 해서 후원이 중단된 아이도 있고, 만 18세가 지나서 종료된 아이도 있어요. 이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 18세면 다 컸다고 하기엔 아직 어린아이들이잖아요.”

어떤 후원자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저를 꼭 기억하지 않아도 돼요. 굳이 기억한다면 제가 보낸 마음, 그리고 이 아이들을 위해 애쓴 굿네이버스라는 단체를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 남아서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해요.”

앞으로 기부 계획은요.

“제가 이제 20년 차 성우예요. 30년, 40년 차가 되면 또 어떤 아이들과 소중한 인연이 생길지 기대됩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따라 기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팬들도 있고, 어머니,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도요. 언젠가는 전 세계에 100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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