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국민들에게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가 신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시작되자 상실·분노·증오·불신·가난·질병·이별 등 온갖 재앙이 한국 사회에 쏟아졌다. 재앙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가 기대한 ‘뉴 밀레니엄(New Millennium)’에 진입해서도 한국에 ‘새 천년 새 희망’은 없었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가정에는 실업자가 넘쳤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했던 대학생들은 캠퍼스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 후 사력을 다해 재건한 터전이 다시 무너진 격이라 국민들의 절망감은 더더욱 컸다.
당시 국가 원수였던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주저앉은 국민들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정보 강국 건설’이다. 아직 세계 무대에 절대 강자가 없어 해볼 만한 신(新)산업 영역이라는 판단이 우선 작용했고, 약소국으로 후진했다는 국민들의 절망을 떨쳐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그 시절 ‘정보’는 선진·첨단·신속·우월 등과 동격의 단어였다.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한 해에만 22차례 공식 연설에서 ‘정보 강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벤처기업 전국 대회처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행사에서뿐 아니라 경찰대 졸업식, 고양세계꽃박람회 개막식,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광복절 경축사, 국회 개원 기념식 등 공식 석상이라면 사실상 어디서나 정보 강국 건설을 외쳤다.
정책적 에너지도 쏟아부었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발표했던 ‘사이버 코리아 21(Cyber Korea 21)’ 정책 실행을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개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고 그 결과 2001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인터넷 초고속망 구축 1위 자리에 올랐다. “오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일류 국가의 선두에 자리매김하도록 합시다”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환상에 가까웠던 연설이 현실이 됐다.
이에 국민들도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초고속 인터넷 광고 카피를 유행어처럼 사용하면서 외환위기 탓에 뒤처졌다는 패배감에서 벗어났다. 반도체·이동통신·디스플레이·모바일 등의 산업은 한국 경제성장의 새 동력이 됐다. 그 사이 정보기술(IT) 산업이라는 용어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으로 확장됐고 2002년 ICT 산업의 수출 기여도는 31.2%까지 늘었다. 요즘 중국의 경제 및 특정 산업의 급성장을 일컫는 ‘굴기(崛起)’의 즐거움이 그 시절 한국 정부와 기업, 국민에게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정보 강국 건설’을 함께했던 전·현직 관료와 기업인들은 그 시절을 가리켜 종종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한다. 아름답고 찬란했던 추억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다시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없을 것이라는 한탄이다. 한탄의 이유는 우선 중국이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첨단산업 ‘굴기’의 증거들이 위협적이어서다.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우주, 바이오 등 이미 한국을 앞서 나가 격차를 점점 벌리고 있는 중국의 기술력은 가히 무서운 수준이다.
화양연화를 경험한 이들이 더 한탄하고, 더 두려워하는 경계의 대상은 우리 안의 무력감이다. 한국의 첨단산업을 가리켜 ‘현상 유지’ ‘2군의 선두’ ‘압도적 3위’ 등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공직자와 기업인이 점점 늘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했다. 중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가 전력을 다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패배감이 감염병처럼 우리 안에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계엄과 탄핵으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면 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할 텐데 모든 게 마비된 듯한 풍경은 공포에 가깝다고 했다.
외환위기 무렵 공직 생활을 시작해 최근 퇴임한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후배들과 젊은 기업인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한국은 이제 선도자가 아닙니다. 다시 추격자 신세입니다. 그렇지만 많이 추격해봤잖아요? 주저 앉지 말고 추격했던 경험으로 다시 달리면 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