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문제지, ‘용산’이 무슨 죄냐

2024-10-10

가수 자이언티는 ‘양화대교’(2014년)에서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노래했다. 김건희 여사는 마포대교에서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며 자살예방을 위한 추가적인 개선을 지시했다. ‘센터 욕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걸까. 애꿎은 건 ‘9·10 마포대교 시찰’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국민의힘 공천 및 전당대회 개입 의혹 등 “김건희 세 글자로 해가 뜨고 지는 날”(허은아 개혁신당 대표)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김 여사의 마포대교 사진은 ‘올해의 사진’이 될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다음달이 돼야 딱 절반’이라길래 이 정권의 레거시(유산)는 무엇이 될까 생각해봤다. ‘바이든-날리면’, ‘59분 다변’과 격노, 먹방과 술…. 윤 대통령 개인 특성에서 비롯된 이미지가 우선 떠오르지만, 이대로 남은 임기를 보낸다면 마포대교 같은 ‘장소’가 레거시로 남을 수도 있다. 유력한 장소는 용산 대통령실·관저다. 소통과 개혁 의지의 출발점이었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온갖 의혹과 정념, 불통과 내로남불의 집적지로 흑화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참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공간 구조로는 국가적 난제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국민을 제대로 섬기고 제대로 일하기 위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발표했던 윤석열 당선인의 발언은 지금 보면 딴 나라 얘기다. 당시 윤 당선인 측에서 청와대를 겨냥해 썼던 “구중궁궐”은 부메랑처럼 용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꼴통” “보수 유튜브 보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발언은 윤 대통령을 두고 항간에 떠돌던 소문을 입증했다. “얘기해봐야 본전도 못 찾으니 입 다물고 있는 거”라는 말은 대통령실 참모 기능이 무너졌다는 방증이다.

김 여사 문제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턱 막힌다. 김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는 텔레그램으로 김 여사와 김영선 전 의원의 총선 공천 대화를 나누고, 김 여사가 그에게 인수위 참여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명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하야’니 ‘정권 붕괴’를 거론하는데도 대통령실 대응은 석연치 않다. 도대체 용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용산이 ‘그들만의 세상’이란 건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이 새삼 확인해줬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청을 거부한 가운데 이뤄진 만찬에선 의료공백 사태나 김 여사 문제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나눈 얘기는 ‘고기 취향’과 ‘건강’ 정도. 여기에 “대통령께서 양자역학을 많이 알고 계셔서 놀랐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아부성 발언이 더해졌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 사또 잔치에 가서 ‘금술잔의 맛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고 읊었던가. 국민들은 의료공백과 민생고에 애가 타는데 이 무슨 한가한 풍경인가. 한 참석자는 만찬이 ‘가을밤을 즐기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했다는데, 정말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신지호 국민의힘 부총장)이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당시 풍수지리적으로 청와대는 흉지, 용산이 길지라는 얘기가 나돌았던 걸 기억한다. 한 풍수 전문가는 청와대가 산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공간이라면 용산은 탁 트인 공간이라 소통이 수월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나. 오히려 용산이 흉지가 될 거 같아 차기 대통령은 용산을 버리고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겠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청와대 흉지설’이 나온 이유도 대통령이 권력에 취해 불행을 자초해서다. 지금 김 여사가 사과를 하니 마니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정권의 리스크를 키운 건 윤 대통령 부부다.

윤 대통령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발 의혹에 대해 ‘공정과 책임’을 얘기하며 “진상을 명백히 밝히라”고 지시하자 ‘너나 잘해’라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이게 민심의 현주소다. 용산 성채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대통령 부부와의 대화 내용이 줄줄이 새고, 여당 내에서도 반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에 할 일은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 ‘리셋’이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중간평가가 있다면 윤 대통령은 ‘불신임’이다. 흉지로 변한 용산을 레거시로 남기고 싶지 않다면 대국적으로 봐야 한다. 김 여사 특검법 등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개혁정책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 임기 단축을 통해 제7공화국 헌법을 여는 선택지도 있다. 잔꾀 부리다 밀려서 하는 게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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