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3)

2024-07-02

푸틴의 평양 방문,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의 최근 정세를 생각하면서 아침 일찍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모래 위의 화가’로 유명한 비토르 라포스를 만났다. 얼마 전에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했던 그의 작품이 생각났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나의 바람을 담은 화폭 하나를 남길 수 있느냐는 제안에 그는 반색을 하며 응했다. 그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한가운데 놓여 있고, ‘코리아의 평화통일’(Reunificação Pacifica da Coreia)이 적혀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화폭을 완성했다. 평화로 나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땅에 뒤이어 비슷한 비극이 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기로의 우크라, 비극의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충격과 불안감은 줄어들었으나 피로감은 반대로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초에 시행된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연합의 18개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36%가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36%는 중요하나 우선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27%는 우선적이지 않다고 대답했다.

현재 유럽연합에 있는 약 650만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 가운데 가장 많은, 118만명이 머물고 있는 독일은 다른 나라의 망명자와 달리 이들을 특별 대우한다는 비판적 여론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 약진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반 망명신청자에게 주는 생계보조비와 달리, 독일인의 실업보조금에 해당하는, 매달 563유로(약 84만원)를 주기 때문에 아예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이 부정적인 여론의 핵심이었다.

지난 6월15~16일 스위스의 뷔르겐스톡 호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관계 변화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회의에는 정작 당사자의 하나인 러시아가 초대되지 않았고 러시아와 현재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은 참석하지도 않았다.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 우크라이나 영토 통합과 포로 교환 등 인도적 문제를 강조한 합의문에도 브릭스(BRICS) 국가인 브라질, 인도, 남아공은 서명하지 않았다. 이 세 나라에 더해 러시아와 중국이 포함된 브릭스는 G7에 강력한 도전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브릭스가 내년에 국가 간의 생산력과 생활 수준을 비교하는 구매력 평가(PPP)에서 세계의 33%를 차지, 29.2%인 G7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을 위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중재자의 모습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지금의 전쟁 상황은 어느 정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실마리는 11월5일에 있을 미국 대선의 결과와 함께 유럽 사회의 여론 추이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 문제를 둘러싼 찬반 여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문제에 대해 전쟁 발발 직후 큰 폭의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 독일과 프랑스의 찬반 비율은 거의 비슷한 40%대 전후다. 그러나 나토 가입 문제에 있어 독일에서는 반대 여론이 훨씬 많고 프랑스에서는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조금 높다.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내걸었던 독일의 사민당과 녹색당,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파병까지 주장했던 프랑스의 마크롱은 참패했다. 두 나라에서 모두 극우정당이 약진하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도덕 정당’에 대해 유럽 여론이 등을 돌렸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게릴라와 정규군 사이의 비대칭적 전쟁이 지니는 특성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가자지구의 비극은 참혹하다. 서울 면적의 절반보다 조금 넓은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작년 10월8일 개전 이래, 3만5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들 중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발표했다.

이 전쟁보다 훨씬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5월 말 현재 1만112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가자지구의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남아공은 지난해 말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긴급 제소했고 올해 1월 말 재판부는 이의 일부를 인용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5월20일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국방상, 그리고 신와르를 비롯한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주의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또 5월 말에는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페인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두 국가의 존재를 서로 인정했던, 1993년 오슬로 협정의 정신을 되새겼다.

오슬로 협정에 서명했던 이스라엘 라빈 총리는 1995년 극우파에 암살되었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대표 아라파트도 협정을 반대했던 하마스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이후 집권한 네타냐후는 두 국가 해결 방식을 사실상 폐기하면서 하마스를 암암리에 지원했다. 밖으로는 하마스에 이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제2전선을 펴야 하고, 안으로는 전쟁 종식을 바라는 비판세력의 저항에 부딪힌 네타냐후를 미국과 서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원하느냐의 문제는 이 비극이 언제 끝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두 국가 이론

제한된 정치 지리적 공간 속에 두 정치적 주체가 평화스럽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도 대륙이 영국의 오랜 식민지에서 해방되자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이 등장했다. 이때 파키스탄이 내세운 것이 ‘두 민족론’이었다.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수차례 전쟁까지 치렀던 두 나라는 1970년대 중반에 핵보유국이 되어 현재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을 내세우는 중국은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나라라는 ‘일변일국’(一邊一國)과 같은 두 개의 중국을 주장하는 대만 정치세력을 이미 하나의 중국을 정립한 ‘1992년 합의’(九二共識)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무력시위도 벌이기 때문에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55년 서독이 독일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주장한 할슈타인 독트린에 맞서 동독은 자본주의 독일과 사회주의 독일이라는 아주 다른 두 개의 독일을 주장하였다. 뿌리 깊은 이런 냉전 시대의 논리를 넘어 ‘접근을 통한 변화’를 내세운 브란트의 ‘동방정치’는 1972년 12월에 동서독 ‘기본조약’을 낳았고, 1973년 9월에는 동서독의 유엔 동시가입에 이어 본과 동베를린에 각각 상주 대표부를 설치했다. 이렇게 지속 가능한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소련 해체라는 국제환경을 주동적으로 맞이하면서 1990년에 재통일이라는 행운을 맛볼 수 있었다.

한반도에도 ‘7·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1991), ‘6·15 남북공동성명’(2000) 그리고 ‘판문점선언’(2018)이 있어 표면상으로는 독일과 비슷한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발전 없이 남북관계는 줄곧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열렸던 조선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는 남북한 관계가 “더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혔다. 이 충격적 내용을 두고 북 내부의 체제 이탈을 차단하고 남한에 대한 핵무력 사용도 정당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고,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한의 특수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랜, 적대적 두 국가의 존재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대적인 두 국가의 존재를 명확히 밝힌 이번 선언의 국제정치적 의미에 주목하면서 기존의 일극 체제가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를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파도를 안고 오는 밀물이 해초와 쓰레기를 바다로 쓸어 나간 뒤에 만든 깨끗한 백사장 위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지금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평화를 위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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