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회 ‘윤석열·안철수 공동정부’…극적 타결과 파국의 전말①
2022년 4월 11일 통의동은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 협소한 서촌 ‘미니 동’의 ‘우하귀’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그 중차대한 공간에서 향후 5년의 물줄기를 단번에 꺾어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부로 인수위원직에서 사퇴합니다.
인수위원 한 명이 사직했다. 그렇고 그런 24명의 인수위원 중 한 명이 아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이하 국당) 대선 후보의 정사(正使)로 활약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이하 국힘) 대선 후보와의 역사적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킨,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이 된 인물이었다. 그는 이태규 국당 의원이었다. (이하 경칭 생략)

그의 사퇴는 분명 파열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철수 측이 극적인 막판 단일화에 합의했던 이유, 즉 ‘윤석열·안철수 공동 정부’의 출범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안철수는 그로부터 3년 반 뒤 12·3 비상계엄이 터졌을 때 텅 빈 국힘 쪽 좌석을 홀로 독점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철저하게 잊혀 지냈다.
안철수는 결국 윤석열에게 배신당했던 걸까. 윤석열에게는 애초에 안철수와 정부를 나눠가질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앞서 유력한 입각 후보였던 이태규는 왜 스스로 밥상을 걷어차면서 ‘공동 정부’ 붕괴의 신호탄을 자처했을까.
‘실록 윤석열 시대’ 취재팀(이하 실록팀)은 전방위 취재 과정에서 이태규의 인수위원직 사퇴 전날 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석열이 등장하는 그 사건은 가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이제부터 이태규의 인수위원직 사퇴로부터 2개월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이 그야말로 피튀기는 혈전을 이어갔던 2022년 2월로 시계를 되돌려보겠다.
소극적이던 尹, 급해지니 움직였다
윤석열은 2022년 1월까지만 해도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관심이 없었다. 대선에서의 압도적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힘 내부의 주류 여론도 다르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은 데다가 지지층이 윤석열과 겹치지 않아 단일화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힘 안팎에서는 이런 상황을 우려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무렵 정치브로커 명태균씨가 훗날 ‘공천개입’ 폭로자가 되는 강혜경씨와의 통화 과정에서 뱉은 말은 그런 이들의 우려를 대변하고 있다.

윤석열 측이 급해지기 시작한 건 2월 들어서였다. 이재명과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자 당 안팎에서는 “보다 확실한 길이 있는데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며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부터 두 후보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 실명이 언급된 이들만 해도 윤석열 측에서는 명태균과 성일종·이철규 의원 등이, 안철수 측에서는 이태규와 최진석 상임 선대위원장, 신재현 선대위 상임고문,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국힘의 전신) 비대위원장 등이 메신저로 은밀하게 활동했다.
그들 사이에 여러 개의 ‘작대기’가 분주하게 오갔고, 그중 한 쌍이 강하게 연결됐다. 그 중 한 명은 이태규였다. 다른 한 명은 바로 그 ‘윤석열의 남자’였다. 이태규는 도장을 찍기 전 마지막으로 ‘카운터파트’가 정말로 윤석열의 정사(正使)인지 확인하기로 했다.
윤석열과 친분이 있었던 이태규는 곧바로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윤석열이 전화기 너머에 등장하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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