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국무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9일 만났다. 이례적이었다. 그간 한은 총재는 통화 정책 독립성을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의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제외하고는 정부 고위 관료와 회동하는 것을 꺼려왔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 총재와 새벽 7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 비공개 경제 현안 간담회를 가졌다. 만남의 성사 과정도 이례적이었다. 김 총리는 지난주 기획재정부의 경제 현안 보고를 받은 뒤 고환율 문제에 대한 구체적 진단을 듣기 위해 한은 측에 추가 보고를 요청했다. 총리실이 기대한 건 담당 국장급 보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이 총재가 “내가 직접 가서 총리께 설명해 드리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 총재가 한 50분가량을 말했고 김 총리는 때때로 질문하며 주로 들었다”고 했다.
이 총재는 고환율 문제의 주된 원인을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지목하는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에서 찾지 않고 미국 등 해외 투자에 편중된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문제로 진단했다고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의 수익성을 고려해 올해 기준 운용액의 36.8%(486조 4260억원)를 해외주식 투자에 쏟고 있는데, 이로 인해 원화 가치 절하가 이뤄지고 있으니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어 이 총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거버넌스 문제까지 거론하며 “통화나 금융에 대한 이해가 적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국민연금을 두는 현재의 부처 편제가 적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이 총재는 이날 김 총리에게 한은 경제연구원이 진행해 온 구조개혁 연구를 직접 홍보했다고 한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기능이 통화를 발권하는 데만 한정되는 것은 옛날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제가 취임한 이후로는 통화·신용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각종 어젠다를 경제연구원을 통해 새롭게 접근해보고 있다”며 그간의 연구들을 일일이 거론했다고 한다.
김 총리가 “우리 총리실 산하에도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가 있고 각종 국책 연구기관들이 있는데 한국은행 연구원은 뭐가 다르죠?”라고 묻자, 이 총재는 “중간보고 때 기존 연구와 같은 결론인 게 뻔하면 거기서 바로 ‘스탑’(STOP·중단)하게 한다. 다른 연구를 하자는 취지”라고 답했다.
한은이 지난 3월 인구소멸 대책으로 발표한 2~6개의 거점 도시를 육성하는 방안이 이 총재가 거론한 대표적 케이스였다. 이 총재는 “거점 도시 육성 연구도 했다”며 “정치적 논쟁을 고려해 거점도시 최대 6개 육성으로 발표했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큰 도시 2개만 육성하면 된다”는 주장했다고 한다. ‘분산’을 골자로 한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지방분권 정책과 다른 연구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경제연구원 결과를 토대로 이 총재는 지난해 4월엔 흉작으로 사과 값이 폭등하자 사과 수입 개방의 필요성 제안했고 지난해 8월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대 등 명문 대학이 지역별 인구 비례로 학생을 선발해야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권에선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인 이 총재를 활용하는 법에 대한 설왕설래가 늘고 있다. 김 총리가 내년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 ‘이창용 총리설’을 언급하는 인사들도 있다. ‘내란청산’이 일단락되는 국면에서 경제에 안정적 신호를 줄 수 있는 카드라는 게 이들이 제시하는 이유다.
여권 일각에선 내년 서울시장 선거 차출설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시민들은 시장에게 개혁 보다는 안정을 기대하는 성향이 강했다”며 “한은 총재를 거쳐 서울시장에 당선됐던 ‘조순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면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인 3월 5일까지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또 다른 여권 고위관계자는 “실전 정치보다는 경제 관료로서 활용도가 더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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