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11월 19일,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스타디움. 브라질 전역이 주목한 경기에서 펠레가 통산 1000번째 골을 기록했다. 수많은 매체와 팬들이 운집했다. 후반 33분 페널티킥 골이 터지자 경기장은 월드컵 우승을 방불케 하는 환호로 뒤덮였다. 가디언은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골이 정말 ‘1000번째’였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31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펠레는 닷새 전인 11월 14일, 브라질 북동부 조앙 페소아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 보타포구를 상대로 득점했다. 산투스의 3-0 승리로 끝난 경기에서 펠레는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이는 기록상 ‘999번째 골’로 집계됐다. 가디언은 “수십 년이 지난 후, 브라질 언론의 기록 재정리 과정에서 1959년 남미 군사대회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넣은 한 골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를 포함하면 보타포구전의 득점이 진정한 1000번째 골이 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당시 산투스가 방문한 조앙 페소아 시의회 의원 데리발두 멘돈사는 펠레에게 도시의 ‘열쇠’를 전달하며, 경기 후 유니폼을 받기로 약속했다. 펠레는 전반 17분 골을 넣은 직후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꿨고, 곧장 멘돈사에게 유니폼을 건네며 “당신이 원한 셔츠를 지금 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이 셔츠는 가족에게 보관됐고, ‘실제 1000번째 골의 순간’이라는 새로운 해석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논란의 배경에는 펠레의 득점 기록이 가진 구조적 특수성이 있다. 펠레는 수많은 국가대표 경기 외에도 지방 리그, 각종 컵 대회, 세계 각지를 돌며 치른 친선경기 등에서 꾸준히 득점을 올렸다. 산투스는 당시 유럽이나 남미 강호들뿐 아니라 지역 아마추어 팀과도 경기를 자주 가졌으며, 경기 기록과 통계의 정확성은 항상 문제로 지적돼왔다.
펠레의 총 득점 기록은 경기당 득점 비율과 함께 항상 회자된다. 기네스북은 그의 통산 성인 무대 기록을 1279골(1363경기)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득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일부 기록에는 주니어 시절(14~16세)에 넣은 수백 골이 빠져 있다는 주장도 있다. 펠레는 해당 논란에 대해 1995년 인터뷰에서 “내가 진짜 1000번째 골을 어디서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보타포구전 당시 펠레가 입은 셔츠는 오는 4월 10일 런던 웸블리에서 열리는 축구 기념품 경매에 출품된다. 경매를 주관하는 헨슨스 월드 풋볼 측은 해당 셔츠 낙찰가가 50만 파운드(약 9억 5234만원)를 웃돌리라 예상하고 있다. 이는 펠레의 1958년·1970년 월드컵 결승전 유니폼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다만, 1986년 마라도나가 ‘신의 손’ 골을 넣은 경기에서 착용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셔츠가 700만 파운드(약 133억 3465만원)에 낙찰된 바 있어, 축구 역사상 최고가에는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