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는 아프다. 피곤한 몸이 병으로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듯 초저출산율과 낮은 삶의 만족도 등 각종 지표들의 비명은 이미 익숙할 지경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주춤했던 자살율은 다시 증가하여 지난해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슬픈 것은 사회적 고립이 수반된 고독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다. 고독사의 이면에는 사회적 고립과 한없는 외로움이 있다. 타인으로부터의 관심과 애정은 식량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기에 외로움은 그 만큼 생존을 위협한다.
공감·조화·연대의 기조 점점 약화
경제 양극화로 고립 문제도 심화
사회문제 누적, 극단주의로 표출
담대한 사회적 인프라 재건 시급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5명 중 1명은 외로움이 일상화한 상태에서 산다고 한다. 물론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적 연대가 느슨해지면서 고립된 개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여러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인구고령화로 교류할 가족이나 친구가 줄어드는 노인들이 늘어간다. 1인가구의 증가는 젊은 층에서도 나타난다. 휴대전화나 키오스크를 통해 거의 모든 일상을 살아낼 수 있게 되어 대면으로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시간은 대폭 줄었다. 그나마 자원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운동이나 문화생활로 사회적 접촉과 사교가 주는 즐거움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유튜브를 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가진 다른 문제점들은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한층 복합적인 문제로 악화시킨다. 노년의 사회적 고립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심화하는 경제적 양극화와 맞물려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린 노인들을 더욱 압박한다. 축소하는 경제와 장기간의 경기침체 속에 부족한 사회적 안전망은 불안한 미래에 짓눌리는 청년들이 또래와의 교류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게끔 만든다. 청년층의 자살율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타인을 관찰하고 눈마주치며 ‘스몰 토크’를 나누는 시간의 효용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서나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나 절대 사소하지 않다.
극심한 경쟁주의는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공감이나 상호호혜적인 관계 형성을 억제한다. 교실에서조차 친구는 경쟁을 하는 상대로 여기게 된 지 이미 오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초등학생들조차 학원 가느라 ‘혼밥’을 하는 경우도 많고, 친구들과 교류하기보다는 홀로 지내거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시간만 과다한 상태라는 점이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역량은 책으로 배운다고 체득되지 않는다. 공감이나 관용, 타인의 존엄에 대한 존중과 같은 덕목은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면서 때로 갈등을 겪고 치유하는 일상의 과정에서 그 감각을 익히는 데서부터 만들어진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단지 개인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을 낮추고 시민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타인과의 연결이나 사회적 소속감이 없이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견해에 빠지기 쉬워지고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고립감을 느낄 때 인간의 뇌는 위험 상태에 있다는 신호를 받아, 무엇이 나를 위협하는지 주목하고 살피는 성향이 활성화해 늘 화가 난 상태와 같아진다고 한다.
극단주의, 생각이 다른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과 혐오, ‘너죽고 나죽자’ 식의 집단적 대결은 느닷없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만 같지만, 실은 이미 오래 곪아온 문제의 표출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난데없는 계엄, 탄핵심판과정에서 정치의 본래 의미와는 멀어져버린 정치인들의 선동, 그리고 심판을 가장하지만 실은 선수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언론만 탓한다면 반쪽만 보는 것이다. 크게 보면 각자의 권리에 대한 주장만 있고 공공선에 대한 이해는 아전인수격으로 취급하고 마는 각자도생식 논리만 팽배해진 우리의 집합적인 마음 상태가 이 모든 것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문제를 마주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에는 2018년부터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라는 정부 부처가 있다. 사회적 연결의 단절과 공동체의 와해를 미래를 위해 맞서야 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처는 시민의 일상에 대면적 접촉을 늘리고 교류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공동체를 지원하고 육성한다. 그 성과가 단기간에 가시적이기는 어렵겠지만, 담대하게 사회적 연대의 인프라를 까는 작업을 늦출 수 없다는 판단과 실행이 부러울 뿐이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권은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드네, 상속세를 깎네, 반값 등록금이네 하는 등 전시성 정책 아이디어를 ‘아무 것이나 얻어 걸려라’ 식으로 정책 상품 진열대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과연 병든 사회와 깨어진 공동체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을 시민들과 나누는 리더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 고생을 하고서도 도돌이표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